언제나 깨어있는 저 새벽별처럼
연초에 나는 약 열흘간 연례 피정(避靜)을 하였다.
다시 새로운 1년을 살아가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 일상 소임에서
완전히 떠나 오직 기도에 전념하고 하느님과 나, 공동체와 나,
이웃과 나, 나와 나의 관계를 성찰하며 침묵 가운데 머무는 시간을
수녀들은 설렘 속에 기다리며 새해를 연다.
안으로 마음을 모을수록 기쁨이 스며들고 발견할 것이 많은
이 내적 순례를 나는 종종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평소엔 잘 안 보이던 것, 안 들리던 것, 안 느껴지던 것들이
피정 동안은 좀 더 잘 들리고 잘 보이고
아주 예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늘과 바다의 푸른 빛깔, 새소리, 바람소리도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오고
수도원에 함께 입회한 동료들의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 사이에 숨겨진 인내의 세월도 더없이 소중하게 읽힌다.
사소한 일로 서로 마음 상했던 것들까지 이젠
그리운 추억으로 되새기며 정다운 눈인사를 나누는 길동무들.
‘사랑의 좁은 길’을 함께 걸어온 수십년의 우정이
혈연 이상으로 고맙고 든든하다.
피정 강론을 맡은 사제는 “소임에서의 긴장을 풀고 잘 쉬십시오.
좀 더 단순하고 자연스러워지십시오.
기도도 사랑도 너무 성공적으로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라고 우리를 위로하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처음 며칠은 정신 없이
잠만 쏟아지더니 이내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도 나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하지만 기도의 맑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싶다는 갈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성당으로 가는 길에는 유난히 빛나는
새벽별 몇 개가 손에 잡힐 듯이 떠 있곤 했다.
밤에 보는 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새벽별.
훤히 깨어있는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고요히 빛을 밝혀주는 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자리에 머물다가 고요히 사라지는 별.
어쩌면 참 기도자의 모습도 별과 같은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이들의 모습도 하늘에 떠있었다.
늘 사랑의 빚을 많이 지고 사는 나는 별을 보며 다짐하였다.
더 많이 감사하기 위해 기도하자.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자.
이제 무엇을 자꾸 달라고 보채기만 하는 기도는
그만 하자고 마음먹었다.
늘 바쁜 것을 핑계로 기도를 소홀히 한 내 모습을
제일 먼저 새벽별에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럽던 날.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주어진 자유시간’이라고 말한
피에르 신부의 말을 새해의 화두로 삼고 싶어 향기 나는 새 노트에 적었다.
‘나를 사로잡은 한 위대한 영혼’ ‘새벽별을 닮은 사람’의 저자 피에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웃음과 유머,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 매력 있어 보인다.
‘모든 사람을 항상 사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 이미 천국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라고 한
그의 말에 용기를 얻으며 나도 새벽별이 되는 꿈을 꾼다.
- 이 해인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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