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20) 성모님의 탄생
회화적 능력·장식미 잘 드러나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
- 작품 해설 : 피에트로 로렌체티, ‘성모님의 탄생’, 1333년, 패널에 템페라,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 부속 미술관.
피에트로의 대표작 ‘성모님의 탄생’
총 세 폭의 구성 중앙과 오른쪽은 성모님 탄생한 방 왼쪽은 대기실
엑스트라 여럿 등장 중세 회화 딱딱함 탈피
성모님의 부친인 성 요아킴과 모친 성 안나를 소개한데 이어, 이번 주부터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한 명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모 마리아는 성미술의 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고 또 그려졌으며 주제는 탄생부터 승천에 이르
기까지 다양하다. 그 첫 번째로 성모님의 탄생이 있는데 예수님의 탄생이 마굿간이라는 초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대
조적으로 성모님의 탄생은 화가가 속한 당대의 아름답고 호화로운 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에나 출신의 화가 피에트로 로렌체티가 그린 ‘성모님의 탄생’은 이 주제의 대표작에 속한다. 시에나는 토스카나 주에 속한 아
름다운 중세 도시로서 정치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14세기에는 피렌체와 라이벌 관계를 이룰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바로
이 무렵 예술적으로도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하였는데 피에트로 로렌체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피에트로의 대표작에 속하는 ‘성모님의 탄생’에 관하여는 1335년 11월에 기록된 한 문헌에 “성 사비노 그림을 위해 피에트로가
금화 30피오리노를 받았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즉 이 그림은 시에나의 대성당 안에 있는 성 사비노 제대에 모셔진 제단화로
서 주문자는 세냐 디 리노라는 사람으로 시에나 주정부의 주요 인물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다.
이 작품이 제작된 14세기는 양식사적으로는 고딕 시대에 속한다. 고딕은 중세의 관념적인 성화에서 벗어나 화가들이 현실에 관
심을 돌려 세속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그림은 세 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과 오른쪽은 성모님이 탄생
한 방 안이며, 왼편은 방과 붙어있는 대기실이다.
방 안의 전경을 보면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성 안나가 몸을 막 풀고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원근법에 의해 깊이감이 느껴
지도록 그려진 체크무늬의 침대보는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화가에게는 자신의 회화적 능력을 보여줄 절호의 모티프
로 쓰인 듯이 보인다.
침대 아래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두 하녀가 보인다. 한 여인은 아기를 안고 대야의 물 온도를 조절하고 있고, 다른 여인은
물을 붓고 있다. 이들의 바로 뒤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서 있는데 손에는 파리채 같은 것을 쥐고 있다. 재미 삼아 등장한
이 제3의 인물은 그야말로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그림의 전개상 감초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뒤에 있는 깨끗한 수건과 필요
한 물품이 들어있는 광주리를 들고 있는 여인들 역시 그림에 꼭 필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일종의 엑스트라로서 이런 인물들을 도
입은 이 그림이 이전의 딱딱한 중세식 그림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역시 그림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 요소로서 화면 왼쪽에는 아내의 출산 중 방에는 들어오지 못한 성 요아킴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한 아이로부터 아이의 출산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방, 가구, 세숫대야나 물동이와 같은 오브제,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의상은 정성껏 치장된 서양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성모님이 양갓집 규수였다는 점에서 착안된 ‘성모 마리아의 탄생’이라는 주제가 이 화가에게는 그림의 장식미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 같다. 이후에 그려진 수많은 성모님의 탄생이 한결같이 이 같은 인물들로 구성된 것을 보면 이 한 점의 그림
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놀랍기만 하다.
[가톨릭신문, 2009년 10월 18일]
'가톨릭 성화,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 세바스티아노와 룩과 함께있는 성모자 " (0) | 2010.02.17 |
---|---|
** 착한 사마리아인 ** (0) | 2010.02.15 |
" 성모님의 결혼식 " (0) | 2010.02.15 |
' 에덤 부찰동, " 십자가를 안고있는 예수님" ' (0) | 2010.02.15 |
' 조르주 드라 투르,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 (0) | 201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