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해설 : 안니발레 카라치, 〈성 스테파노의 순교〉, 1603-04, 40×53cm, 파리,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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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이번주 불멸의 성인은 성 스테파노로 정했습니다. 김 추기경께서 평생동안 안고 살아가신 스테파노 성인을 성화와 함께 묵상해 봅니다.
성 스테파노는 교회 역사상 첫 순교 성인으로 그에 관한 기록은 사도행전 제 6장과 7장, 그리고 13세기에 저술된 '황금전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테파노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던 시절에 살았으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이 임명한 최초의 부제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유다에는 팔레스티나 출신 유대교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 이주하여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하며,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얼굴을 붉히는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로 그리스 출신의 과부와 노약자들이 히브리 출신 유다인들에 비해 음식의 배급 등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는 불평이 사도들의 귀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에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은 평판이 좋고 지혜로운 사람들 일곱 명을 뽑아서 부제라는 직책을 주고 이들에게 사도들을 도와 설교와 세례성사를 줌은 물론 음식 배급을 비롯한 공동체 생활을 돕는 일을 맡기기로 하였다. 이들이 바로 교회 역사상 최초로 뽑힌 7인의 부제이며 성 스테파노는 이들 부제 중의 대표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에 대해 '믿음과 성령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평했으며, 품위와 강력한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한다.
스테파노는 특히 성령이 가득한 설교를 잘 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회당에서 스테파노가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 그리고 아시아 출신의 회당에 속한 몇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논쟁자들은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스테파노와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스테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하게 하고는 그를 체포하여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예수가 성전을 허물고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 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라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하였다. 이때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스테파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다고 사도행전은 적고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진짜 모독했는지에 대한 대사제의 질문에 스테파노는 긴 답변을 하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에서부터 모세를 거쳐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역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 만이 가능한 답변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의로우신 분 예수님을 죽였다고 질책했는데 성경에 적힌 이 부분을 읽다보면 스테파노 성인이 얼마나 박식하였으며,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의 말에 화가 치밀었으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해 있었으며, 하늘을 바라보니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몰고 가서는 돌로 쳐 죽였다.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외친 후 잠들었다고 한다. 성경은 잠들었다고 표현했을 뿐 죽었다고 쓰지 않았는데 이는 부활을 기다리며 잠이 든다는 초대 교회의 믿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의 발 앞에 두고 그것을 지키라고 했다.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이는 순간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인 바오로도 개종하기 전의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독실한 몇 사람이 성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통곡했으며,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 앞잡이가 바로 사울이었던 것이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는 스테파노의 마지막 기도처럼 사울은 이후 개종하여 바오로로 이름을 바꾸고 베드로 성인과 더불어 교회의 설립자가 되었다. 이로써 스테파노 성인은 서방 교회 역사상 첫 순교성인이 되었으며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그 해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안니발레의 '성 스테파노의 순교'
스테파노는 역사상 첫 순교성인이었기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가장 많이 그려졌다.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 스테파노의 순교'는 성난 군중이 성인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광장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자세로 성인을 돌로 내치거나 돌을 던지고 있고, 스테파노는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채 평화로운 얼굴로 두 손을 들어 마치 기도하듯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늘에서는 천사가 그에게 천국의 왕관을 씌워주려 하고 있고, 구름 위에서는 성부와 성자가 그를 맞이하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린 안니발레 카라치는 바로크 양식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안니발레의 고향은 볼로냐인데 당시 볼로냐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트렌트 공의회를 일시적으로 개최하기도 하는 등 로마에 이어 가톨릭 개혁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였다. 안니발레는 처음에는 고향에서 활동하면서 가톨릭 개혁 회화의 이정표를 마련했고, 이후 가톨릭교회가 개신교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승리한 1600년경에는 로마에서 활동하면서 승리한 가톨릭교회의 위상을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그것이 바로 바로크 양식이다. 17세기 전 유럽을 강타한 바로크 양식이 바로 이 화가의 손과 머리에서 탄생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여지는 그림의 화면 구성과 돌을 던지는 군중들의 다소 과장된 자세 등이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면, 이처럼 순교 성인의 일화가 대거 쏟아져 나온 것 역시 바로크 회화의 특징에 속한다. 개신교가 성인을 부정한 반면 가톨릭은 성인공경을 더욱 공고히 했는데 그 같은 방침이 화가들을 통해 성화로 표현된 것이다.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연재를 시작할 무렵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고, 그분의 세례명이 스테파노였기에 본 칼럼의 첫 글을 성 스테파노에 헌정했었다. 어느새 추기경님의 선종 일주년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현상들이 일시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추기경님은 우리의 가슴에 늘 따뜻한 불을 지펴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으로 믿는다. 지금도 천상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김 추기경님께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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