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 조토, <재산을 버림>, 1297-1299, 270×230 cm, 프레스코 벽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사실적 인체 묘사 일반 구경꾼 등장
사실주의 회화 ‘꿈틀’
로마에서 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아시시(Assisi)라는 중세 도시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유서 깊은 도시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아시시는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 작은 마을은 늘 순례객과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을 방문하여 참배하고,
이 성당이 지니고 있는 멋진 예술품들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1181년에 태어나 1226년 선종하였는데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성인이 된지 2년 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첫 삽을 뜨면서
아시시 대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빨리 시성식이 이루어지고 성인에게 봉헌될 성당이 지어졌다는 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당대인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남겼는지를 짐작케 한다.
성인의 명성에 걸맞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예술적으로도 미술사 교과서로 불릴 만하다.
건축도 건축이지만 이 성당은 서양 미술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치마부에,
조토,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제티와 같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거장들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조토(Giotto, 1267-1337)인데
그의 걸작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가 대성당 1층의 양쪽 벽면에
28개의 장면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이제 그 중의 한 장면을 감상해 보자.
아시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치스코가
스폴레토에서 환시를 본 후 속세의 방탕한 삶을 버리고
성 다미아노라는 아시시 근처의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십자가에서 세 번씩이나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프란치스코, 허물어가는 교회를 고치거라!”
말씀대로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고치고자 마음먹었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친이 판매하던 상품의 일부를 몰래 내다가 팔았다.
이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가업을 이을 줄 알았던 아들이 딴 데 정신이 팔려있다며
노발대발하여 아들을 주교에게 넘겨 재판을 받도록 했다.
주교는 프란치스코에게 부친의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했고,
성인은 부친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속권을 포기함은 물론
입고 있는 속옷까지 벗어서 아버지께 돌려 드렸다고 한다.
세속의 삶과 영원히 작별한 것이다.
화가는 화면을 좌, 우로 나누어서 오른 쪽에는 발가벗은 프란치스코에게
주교가 망토를 둘러주는 장면을, 왼쪽에는 프란치스코의 아버지가
아들이 넘겨준 옷가지를 한 쪽 팔에 받아들고 서 있는 모습을 그렸다.
주먹을 불끈 쥔 다른 쪽 팔을 옆 사람이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친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여기 그려진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고대 이래 일반 남성의 알몸이
성화 속에 등장한 최초의 예다.
이런 모습의 인체를 그리기 위해서는 사실 관찰이 필요한데
조토 이전에는 누구도 사실을 관찰하여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당대의 건축물들도 보이고
또 당시의 복장을 한 구경꾼들도 등장하는데
성화에 성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 등장한 것도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그림이란 실제의 재현이라는 사실주의 회화가 지금 탄생하고 있는 중이다.
<자료 : 고종희·마리아·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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