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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화, 미술

" 묶인 어린 양 "


묶인 어린양
프란치스꼬 드 수르바란 (Francisco de Zurbaran) (1598- 1664) 유화 38 x 62cm,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성서에서 그리스도가 길 잃은 양들을 인도하는 착한 목자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연중주간을 시작하면서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드러내시는데, (요한 복음 1. 29절) 어린양이란 개념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명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개념이며 구약에서부터 “야훼의 종”의 개념으로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이 깍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이아 53, 1)라는 말씀에서처럼 인류의 속죄 구원을 위해 치른 그리스도의 희생을 설명하고 있으며 신약에 와서 이것은 위에 인용한 요한복음에서부터 사도행전(8. 32)에서 필립보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권할 때 이점을 강조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한 희생을 말할 때 자주 언급되고 있어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여러 화가들이 바로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을 많이 그리고 있는데, 대부분 요한복음처럼 세례자 요한과 연관시키거나 아니면 소년 예수와 연관시켜 약간 화려하면서 스펙타클하게 그리고 있으나, 이 작가는 예외적으로 자연주의적 기법을 사용해서 실재 양 한마리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충격적이며 감동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 그림의 양은 이스라엘 시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린양, 성전 마당에서 봉헌되기 직전의 어린 양인데, 밑에 있는 도살대에 놓인 것을 보면 이제 곧 도살될 처지에 있음이 틀림없다.

작가는 이 극적인 순간을 잡아 우리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너무 자연스럽게 강렬히 전하고 있다. 온몸을 꼼짝도 못하게 발이 묶인 상태에서 도살대 위에 놓인 양의 배경은 깨끗한 흰색의 양과 대조적인 검은 색깔이어서 머잖아 그에게 닥칠 죽음의 끔찍함을 예고하는 듯 하다. 작가는 도살대위에서 생명이 끊어질 위기에 있는 어린양의 속수무책의 암담함을 통해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치루어야 할 희생을 강한 상징으로 암시하고 있다.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흠 없는 어린양의 상징은 신약에서 죄 많은 우리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에 바치는 그리스도 희생의 예표로 나타나고 있는데,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선 다음과 같이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은이나 금 따위의 없어질 물건으로 값을 치르고 된 일이 아니라 흠도 없는 어린 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얻은 것입니다”(1: 18 - 19).

이 주제에 감동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얼마간 조각이나 모쟈익을 사용해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렸으나 교회가 종교자유를 얻고 성장하면서 그리스도를 이런 연약한 동물로 상징하는데 대해 강한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세례 사건을 기술하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자기 스승이 한갓 인간에 불과한 세례자 요한에게 무릎을 꿇고 세례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몹시 불편한 심기를 느껴 세례 사실을 될 수 있는 대로 축소해서 기록한 것과도 같은 심사이며 이런 경향이 강해지자 서기 692년 콘스탄티노폴 공의회에서 유스티안 황제는 예수님께 대한 어떤 상징적인 것이던 동물로 묘사하는 것은 금하며 인간 형상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고 결정했으나,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그분을 설명하는데 어린양만큼 적합하고 감동적인 것이 없기에 이 형상은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다.

묵인 어린양에 대한 이미지는 간혹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리는 화가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그림의 한 구석에 등장시킴으로 태어나실 아기가 미래에 받을 고난의 희생을 미리 암시하기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어린양의 이미지를 더 승화시켜 묵인 어린양을 제대위에 올려놓음으로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이 바로 어린양 예수님임을 더 강력히 표현하고 있다.

작가와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던 신비가 루이 드 레옹 (Luis de Leon)이 지은 신비 시에 나타나고 있는 “양순하시고 순결하시고 무죄하신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도다.”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으며 어린양을 주제로 한 많은 성화들 가운데 이 그림은 그 단순한 감동으로 다른 작품의 추종을 불허하게 만들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8세기 스페인 예술사를 저술한 안토니오 빨로미노(Antonio Palomino)는 이 그림에 다음과 같은 찬사를 남겼다. “이 어린양의 그림은 백 마리의 살아 있는 양 보다 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 그림은 특히 단순함의 가치를 존중하는 프란치스칸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성인은 생애에서 특별히 하느님의 아들과의 유사성이 비유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주 다정하게 안았고 더없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1첼라노 77). “또한 그분은 모든 동물들을 형제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갖가지 동물 중에서도 온순한 것을 더 좋아하였다.” (2첼라노 165)

이 작품을 깊히 맛들이고 나면 우리는 삶의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한 것들을 통해 이 그림이 주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프란치스칸적인 심미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이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