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화, 미술 ' 인간의 창조 / 마르크 샤갈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10. 4. 10. 23:54 제목: 인간의 창조 (La Creation de l‘homme) 작가: 마르크 샤갈 (Marc Chagal) 크기: 300 X 200cm (1956-1958) 소재지: 프랑스 니스(Nice) 국립 박물관 교회미술이나 성미술이라 할 때 작가가 크리스찬이거나 아니면 작품의 주제가 성서인지에 기준을 두는 게 보통이나,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 샤갈은 좀 예외적인 인물에 속한다.그는 유대인이고 철저한 유대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구약 전통만을 모든 것으로 여기면서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 민족을 선민으로 선택하시어 다른 민족들과 다르게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되리라 믿기에, 모든 인류를 하느님의 백성과 형제로 여기는 크리스챤적인 시각에선 참으로 편협하고 답답한 신앙의 바탕을 지닌 사람들이다.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성서를 통해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선에 도취되었기에, 그의 종교관은 성서를 열심히 읽을수록 유대교의 편협성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의 그림은, 야훼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 같이 햇빛을 내려 주시고 옳은 사람이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주시는” (마태오 5.:4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한다.그는 이처럼 경건한 유대교 신자로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야훼 하느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경계를 벗어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유대인의 작품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온 세상 사람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그의 작품은 우리의 시각으로도 막힘이 없는 수준 높은 성미술이다.그는 1887년 오늘의 리투아니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는 러시아의 비테브스크라는 조그만 촌락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은 해산물 창고의 사무원이었으며, 모친은 잡화상의 점원으로 일했으니 그의 처지는 알만하다. 9남매의 맏이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신앙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그러기에 그는 찌들린 가난을 체험했던 자기 고향의 모든 것을 일생 동안 사랑했으며, 이 고향에서의 추억이 그의 작품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재가 될 수 있었다.푸줏간 주인, 마을의 집달리, 행상인, 이발소, 잡화상, 은행, 소, 말, 양과 같은 가축들, 장터에서 만난 곡예사 등, 고향에서 만났던 모든 것들이 그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이런 주인공들은 찌들린 삶의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보호를 굳게 믿기에 언제나 낙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유로운 인간들로 나타나고 있다.그의 작품 소재에서는 다른 작가들에게 흔히 등장하고 있는 삶의 여유를 누리는 소위 세상의 눈으로 본 고귀한 신분이란 사람들은 없고, 오직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면서도 하느님을 믿기에 더 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민초(民草) 인생들이 언제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의 작품의 큰 두 주제는 그에게 삶의 활기를 준 성서와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더없이 행복 했던 고향, 비테브스크였다.그에게 있어 바라 볼 수 있는 하늘은 성서요, 삶의 휴식과 기쁨을 줄 수 있는 땅은 바로 고향 땅이었다. “성경과 모챨트가 없는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만큼 그는 성서를 삶의 원천으로 받아들였기에 그의 방대한 작품 소제에서 성서는 단연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1973년 이 작품이 전시된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 개관식에서 성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청년기 이후 나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다.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시정(詩精)의 원천이다. 나는 내 삶과 예술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성서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 비밀과 자연의 반향과 같은 것이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한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사랑과 희망의 색깔로 인생을 채색해 나가야 하며 이런 사랑 안에 삶의 사회적 논리와 모든 종교의 핵심 내용이 들어있다.”행복한 철학자로 불리는 가스통 비슐라르는 성서와 샤갈의 관계를 “그가 성서를 읽으면, 이것은 즉시 한 줄기 빛이 된다.”라는 찬사에 대해 작가는 “나는 성서를 읽었던 게 아니라 성서를 꿈꾸었다”는 표현대로 성서는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는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을 17점을 그렸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의 창조>이다. 창세기 1장 26절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신 말씀에 따라 금방 창조된 아담과, 창조하신 후 무척 흐뭇해하신 하느님의 걸작품, 아담을 두 팔에 안고 공중을 날고 있는 천사가 주인공이다.작가는 하느님의 창조의 역동성과 계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른쪽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중심으로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왕들과 예언자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장대한 역사를 그리고 있는데,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인인 그가 예수님을 자기 작품에 그린 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성서에 깊이 몰두함으로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울타리를 허무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편협한 유태인으로서 경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삶의 결실이었다.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신약은 구약에 숨어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밝혀진다. Novum in vetere latet, Vetus in novo patet.”는 말씀을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시원하고 정확하게 표현했다.이 작품에서 창조된 아담은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는 인간을 만든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창조는 한 인간과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임을, 그렇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은 피조물의 처지에 안주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않되고, 계속적으로 하느님 창조사업의 동반자요, 협력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아담은 성인으로 나타나면서도 그 표정이 너무 앳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천사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모습, 즉 천사의 손안에서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잠든 어린이처럼 축 늘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께 전적인 의탁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전자제품은 그것을 만든 회사의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최고의 효율성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인간도 자기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게 인생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요한 신부>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 ** ~ 천상의 모후(=수호 천사) ~**~ '가톨릭 성화,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례자 요한 " (0) 2010.04.11 ' 세례명 ' (0) 2010.04.10 " 삼위일체 / 조바니 마사치오 " (0) 2010.04.08 " 부활 STOSS " (0) 2010.04.08 ' 세 명의 증인 앞에서 아기예수님를 체벌하시는 성모 ' (0) 2010.04.06 '가톨릭 성화, 미술' Related Articles " 세례자 요한 " ' 세례명 ' " 삼위일체 / 조바니 마사치오 " " 부활 STO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