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은 즈카리아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엘리사벳은 성모
님의 사촌언니인데, 엘리사벳이 임신 여섯 달 되었을 때 막 아기 예수를 잉
태한 마리아가 언니 집을 방문하였으니 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쯤 먼
저 태어났으며 서로 6촌간인 셈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관한 전설
‘황금전설’에 따르면 요한의 부모인 즈카리아와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 유다의 사제 집안의 후손이었던 즈카리아가 당시의 관행대로 어
느 날 성소에 들어가 제단에 분향을 하고 있는데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
났다. 가브리엘은 성모 마리아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한 바로 그 천사
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즈카리아에게 천사가 말했다.
“두려워 말라, 주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러나 즈카리아는 이미 늙었고, 아내 엘리사벳 역시 임신이 가능한 나이가 지났으므로 천사의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
다. 주님의 뜻을 의심한 대가로 즈카리아는 그 즉시 벙어리가 되었으며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의심이 풀
린 후였다.
즈카리아가 성소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벙어리가 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즈카리아는 자신이 신비한 체험을 했음을 알렸다. 일주일간의 성소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엘리사벳
은 과연 아이를 갖게 되었으나 다섯 달 동안 부끄러움에 임신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임의 불명예에
서 벗어난 것이 이들 부부를 한없이 기쁘게 했다.
임신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성모 마리아가 사촌인 엘리사벳의 임신을 축하해주기 위해 방문하였고, 즈카리아가 말을 되찾
은 것은 바로 이때다. 이 특별한 ‘방문’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며 본 기획연재에서도 소개한 바 있
다. 마리아가 인사를 나누자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아기도 기뻐 뛰놀았다고 전해진다. 마리아는 석 달 동안 엘리사벳
의 집에 머물며 언니를 돌보았고, 요한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산파 역할을 해준 사람도 바로 성모님이었으니 요한은 참
으로 축복 속에서 탄생되었다.
이 같은 사연 때문에 화가들은 성모님과 두 아기, 즉 세례자 요한과 아기 예수가 함께 노니는 모습을 즐겨 그리곤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도 그 중의 하나이다. 중앙에 성모님이 있고, 왼쪽에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경배를
드리는 아기가 세례자 요한이며, 그 맞은편에서 축성을 내리고 있는 아기가 바로 예수이다. 오른쪽 끝에서 관객을 바라
보며 손가락으로 요한을 가리키고 있는 자는 천사로서 관객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어슴푸레한 동굴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과 갖가지 식물과 괴이한 바위들, 그리고 동굴 저편에 보이는 어슴푸
레한 빛의 모습이 신비롭게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빈치 특유의 ‘스푸마토’라 불리는 회화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스푸마토는 ‘뿌옇다, 혹은 흐릿하다’라는 의미로서 그림을 그릴 때 윤곽선을 뚜
렷하게 그리지 않고 면과 면을 섬세한 명암법에 의해 그림으로써 보다 생생한 느낌을 살리는 방식인데 ‘동굴 속의 성
모’는 이 기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어둠 속에서는 윤곽선이 보이지 않는다.”
다빈치가 자신의 비망록에 쓴 이 글은 바로 이 작품을 두고 한 말인 듯 실감나게 느껴진다.
[가톨릭신문, 2010년 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