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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3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창세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제2독서 콜로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복음 루카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몇 년 전에 충청도 금산에 위치하고 있는 ‘장애우 평등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가르치면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사실 처음 방문할 때에는 많은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그마한 장애도 아닌 1급 장애인들만 모여서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두가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고, 말하는 것이 편하지 않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공동체를 운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 불편함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편하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아닌,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주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기분이 좋을까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나의 이웃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시고 기뻐하실까요? 따라서 언제나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방, 특히 주님의 입장에서 먼저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실까요? 특히 우리들의 큰 잘못은 주님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쉽게 포기하여 주님 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청하기만 한다면 끝까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가시는 주님을 향해 계속된 청을 드려서 결국에는 의인 열 명만으로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자신의 짧은 생각과 이해로 쉽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큰 사랑을 굳게 믿고 끊임없이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을 주신다고 하시지요. 즉, 우리가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이라는 단어의 모양은 사랑이라는 말을 닮았다. ‘살아간다’와 ‘사랑한다’도 닮았다. 사람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 사랑한다는 건 결국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곽금주)


주님을 아는 좋은 방법. 책입니다. 어제 책을 샀지요. 너무 기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시다.

전철을 이용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안의 사람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꺼내놓고서 무엇인가를 바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묵주기도를 바치는 분들을 만나게 되지요. 묵주 알 하나하나를 정성껏 굴리는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반갑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같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친밀감과 함께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저 역시 전철을 탈 때에는 스마트폰을 꺼내기보다는 묵주를 꺼내서 기도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묵주기도를 하는 그 누군가를 보고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듯이, 제 모습을 보고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친밀감과 유대감. 이 세상을 더욱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신앙인들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에게 힘만을 얻으려고 하고, 반대로 힘이 되어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신앙 공동체. 우리가 이 세상을 쉽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며, 주님께서도 원하는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