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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3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집회 35,15ㄴ-17.20-22ㄴ

15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제2독서 2티모 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얼마 전에 전철을 탔다가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무척이나 예쁘고 귀여웠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이 아이들을 향해서 눈길이 갔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하는 말이 제 귀에도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끝마다 계속해서 욕이 들어갑니다.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얼굴에서 듣기 거북한 욕이 나온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었지요.

솔직히 욕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서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좋은 욕이란 있을 수가 없지요. 아무리 친구들 사이에 허물이 없어서 욕을 한다고 해도, 그 욕을 통해 더 가까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러 센 척 보이려고 욕을 한다고 하지만, 그 모습이 결코 멋져 보이지도 또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힘 센 사람이 아닙니다. 또 돈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도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 사람들 위에 설 수 있는 지위를 가지고서도 오히려 자신을 낮춰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 등등이 이 세상 안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남보다 자기를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과시에만 급급한 사람 역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당연히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사랑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더더구나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좋아하고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은 앞서 우리들이 존경하고 사랑받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잘 알면서도 늘 내 자신만을 바라보기에 당연히 주님께서 싫어하는 모습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사이는 자기 과시에만 급급하지요. 세리처럼 죄인도 아니고, 단식도 하고, 십일조도 바친다면서 이렇게 옳은 자기이니 많은 축복을 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앞에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한들 하느님의 사랑에 비교할 때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러한 자기 과시의 기도가 아닌, 세리와 같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칭하면서 겸손할 수 있는 즉,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낮추는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서로 행복한 사회,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고통은 끌어안아야 비로소 누그러드는 것이다(타네다 산토카).


수능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이러한 상품도 나오는군요.


멀리 가려면(문요한, ‘문요한의 마음 청진기’ 중에서)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너 그리고 우리가 있기 때문에 나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내가 아닌 누군가와의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좋은 글을 발견해서 그대로 옮겨 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세계적인 건강식품 회사 ‘웨이트 와처스’ 창업자인 진 니데치는 어릴 때부터 과체중이었습니다. 살 빼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 없던 그녀는 서른여덟 살에 몸무게가 96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마주친 이웃에게 “해산일이 언제인가요?”라는 말을 들은 그녀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지만, 누구를 미워할 게 아니라 자신의 탓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다이어트에 매달렸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숱한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이어트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하며 이겨 나갈 수 있는 모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우선 여섯 명의 비만 친구를 모았습니다. 체중 조절을 위한 자조 모임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위로받았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온통 먹는 것에 집중했던 입에 ‘말하기’라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 것입니다.

모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지지하고 함께 배우면서 점점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진 니데치는 회사까지 차렸습니다. 혼자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실패를 반복했던 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오래 하고,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습니다.

유방암 수술 받은 여성들이 집단 치유 모임에 참가한 경우 비참가자들에 비해 생존 기간이 두 배가량 연장됩니다. 또한 미국의 알라메다 지역에 사는 7천여 명의 남녀를 9년간 조사한 결과, 인간관계나 공동체 유대가 결여된 사람들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9~3.1배 더 높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었을 때 치유력과 건강이 좋아집니다. 같은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사람과의 연결이든, 성향이 다른 사람과의 깊은 연결이든, 더 큰 존재와의 연결이든, 함께 하면 건강해지고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