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세례자 요한이 그의 공생활을 준비한 곳으로 수도원의 기원은 헤로데 대왕이 예수님의 탄생 후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태 2,16 (예수님 탄생 후)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엘리사벳은 아기 요한을 헤로데의 군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아인카렘에서 이곳으로 피신하여 왔다. 소렉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해발 590 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외딴 곳이지만 동굴과 우물이 있어서 피신 장소로는 적합한 곳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엘리사벳은 이곳 동굴에 세례자 요한을 숨겨 군사들로부터 보호하였다고 한다.
12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복원하던 십자군들은 동방의 은수자들이 은수처로 삼고 있던 이곳 동굴과 샘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아랍어로 ‘은수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진 ‘에인 알 하비스’(Ein al-Habis)라는 마을의 명칭 속에 세례자 요한에 대한 전승이 전해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예언자로 공경 받고 있는 인물이다.
마을의 명칭뿐만 아니라 기록물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1586년도 요한 주알라르도(Giovanni Zuallardo)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지만 은수자의 샘에 교회와 수도원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 광야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12세기의 익명의 저자가 전하는 기록물로 기념 경당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주목해 볼만한 것은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 순례자들은 이곳을 잊지 않고 경배하며 순례 했다는 것이다.
16세기에 요한 주알라르도는 “성모님 방문 성당을 나서면서 세례자 요한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스라엘에 나타나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광야를 방문하기 위하여 십리가 넘는 거리를 더 걷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광야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걷기에 매우 불편하고 위험천만하였지만 세례자 요한이 오랫동안 살면서 고행을 하였던 장소를 보는 것에서 크나큰 기쁨과 위안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626년 꽈레스미(Quaresmi) 신부는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성당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복구된 성당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1631년에 에우제니오 로제르(Eugenio Roger) 형제는 세례자 요한 대축일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모든 형제들과 순례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살았던 동굴로 가서 밤을 새우고 미사를 드렸다고 전하고 있다.
1800년도 말에 이곳을 순례했던 한 사제는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여 미사를 거행했었다”고 회상하면서 거의 버려져 있는 그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1850에서 1855년 사이에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는 이곳의 소유권을 취득하였고, 1911년 11월 10일 프란치스칸 성지관구는 세례자 요한 광야를 양도 받아 6헥타르의 땅에 울타리를 쌓았고 작은 수도원과 성당을 지었다. 현재의 수도원은 타볼산과 겟세마니 성당 등을 지은 바를루지(Barluzzi)가 지은 것으로 1923에 축성되었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두 가지를 기념하는 성지이다. 하나는 루가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회개를 선포하기 이전에 성장한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요한의 어머니 성녀 엘리사벳이 묻힌 무덤이 있는 곳이다. 엘리사벳의 무덤은 비잔틴시대, 십자군시대의 건물 위에 다시 20세기에 건축되었다.
루카 1,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수도원 정문-왼쪽은 순례자들을 위한 주차장
사진 중간부분,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수도원과 피정 집...사진 오른쪽 위쪽에 있는 작은 건물은 엘리사벳 성녀 무덤이 있는 곳이다.
수도원과 수도원 성당
수도원과 피정집들...
유칼립투스 나무는 수도원 건물 높이보다 더 크다...연못은 유칼립투스 나무에 가려져 있다.
성지관구는 1975년에 프랑스 신심단체의 요청에 따라 이곳에 살도록 수도원을 내주었고, 이들은 이곳에서 ‘동방 가톨릭 멜키트교’(아랍어로 비잔틴 전례를 준수하 동방 카톨릭 교회. 이집트와 시리아에 분포되어 있음)에 속하는 수도단체를 창설하였다. 멜키트교 수도자들은 이곳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기 위하여 교황청과 이스라엘 법원에 프란치스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불미스러운 스캔들만 만들고 오히려 소송에 패하였고 2001년에 프란치스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방 가톨릭 멜키트 은수자들이 사용하던 수도원 식당...이콘은 소련 작가에 의해 그려졌다. 동방 가톨릭 수도자 답게 가운데 성모님을 중심으로 왼쪽은 서방의 성인들과 오른쪽은 동방의 성인들을 그렸다.
동방과 서방의 성인들 중간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도미니코 성인의 이콘이.
엘리사벳 성녀의 무덤이 있던 곳에는 그랜드캠프 수녀회(Grandcamp) 수녀들이 1973년부터 진출하여 살고 있다. 1930년대 스위스의 몇 명의 개신교 여자 신도들은 매일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서 반향 하도록 하기 위한 침묵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매년 한 번씩 그랜드캠프에서 영적인 피정을 하다가 차츰 더 횟수를 늘려갔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개방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 공동체의 기원이 되었다. 이 공동체는 개신교 교회에서 태어난 국제 공동체이며 교회의 일치와 화해를 소명으로 하고 있다. 침묵과 고독안에서 ‘기도와 일’이라는 가톨릭 수도원 전통을 받아들여 살고 있다.
그랜드 캠프 본원에서 기도하는 모습
사진에서 오른쪽 중간쯤 동그란 원으로 표시해 놓은것이 엘리사벳 무덤이고, 그곳에 수녀들이 살고 있다. 수녀원 위쪽은 에벤 사피르 모샤브이며 사진 중간 아래쪽에 있는 건물은 수도원과 피정집이다.
엘리사벳 성녀의 무덤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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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쪽에 있는 십자가는 십자군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엘리사벳 성녀 무덤과 경당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사파이어 보석’을 뜻하는 ‘에벤 사피르’(Even Sapir, 히-????? ???????) 모샤브(moshav) 아래에 위치해 있다. 예루살렘 외곽에 위치해 있는 이 모샤브는 행정구역상 ‘벳 세메스’에 있는 마테 예후다(Mateh Yehuda) 지역 협의회에 속해 있고 2006년 인구는 654명이었다. 이 모샤브는 1950년에 쿠르디스탄(Kurdistan)에서 이주한 유대인들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에벤 사피르 정문
에벤 사피르 우체국 겸 슈퍼
스페인 저자에 의하면 아인카렘 엘리사벳 방문 기념성당에 있는 세례자 요한을 헤로데의 병사들로부터 숨겨준 기적의 바위는 6세기 비잔틴 시대에 이곳에서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비잔틴 시대에 성지의 장소들이 성역화 될 때 세례자 요한이 살았던 이곳 광야는 숲이 우거지고 뭇짐승들이 사는 한적한 곳이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쉽게 공경할 수 있는 방문 성당으로 옮겨 갔다고 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소렉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언덕위에 청동기 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마을인 사타프(Sataf) 유적지가 있다. 고고학 발굴 결과 45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제2차 성전시대와 비잔틴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그 후 십자군과 오트만 터키 시대에 간헐적으로 복구되었다. 1945년에는 540여명이 살고 있는 아랍 마을이었는데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발발한 전쟁으로 모두 쫓겨났다.
높이 740미터 산 중턱 600미터쯤에는 사타프 유적지에는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에 있는 자연샘물처럼 두 개의 자연 샘이 있어서 이 샘물을 모아 가파른 산등성이를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관개 농사를 할 수 있도록 채소밭을 만들었고, 올리브나무와 아몬드 그리고 포도들을 재배 하였다.
사타프 정상에는 찻집을 겸한 식당이 하나 있어서 에벤 사피르 모샤브와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 정면에 있는 사타프(sataf)는 이스라엘 트랙킹 코스가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사타프 마을 유적지와 밭들
샘물을 받아 관개농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샘물 2. 샘물을 흐르도록 만든 터널 3. 작은 저수지
샘물로 들어가는 동굴
사타프 정상에 있는 전망대 음식점
사타프 마을 유적지
비탈진 산을 개간하여 만든 밭
사람들이 살았던 동굴집들...
사타프에서 바라본 에벤 사피르 모샤브와 수도원
사타프에서 바라본 아인카렘 하다사 병원
‘드릴라’가 살았던 소렉 골짜기는 유다와 벤자민의 경계지역에 위치하는 곳이었다.
판관 16,4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뒤,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들릴라였다.
위쪽에 둥근 표시는 에벤 사피르 모샤브 마을이고 아래쪽 둥근 표시가 수도원이다. 수도원 아래쪽에 나 있는 도로가 있는 곳이 소렉 골짜기이다.
소렉 골짜기에서 수도원을 올려다 본 모습
소렉 골짜기...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 가면 벳 세메스가 나온다.
2010년 2월 27일, 폭우가 내린 후. 소렉 골짜기에 시냇물이 흘러 내려가는 것은 처음...
승용차가 빠져 떠내려가고...신기하지요...이렇게 물이 불어 흐리고 있는데 자동차를 몰고 거기를 건너려고 하는 이유가...차를 가지고 건너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인데 차를 몰고 들어가서 하루종일 사서 고생...
주말이 되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소렉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겼던 주님의 궤를 실은 수레가 돌아온 벳 세메스(1사무 6장 참조)가 나온다. 그리고 주님의 궤를 모셔간 키르얏 여아림은 맞은편 사타프 너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다른 성지의 성당들에 비해 찾아오는 이들이 드문 한적하고 고요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이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기념 성지가 있는 아인카렘에서 자동차 도로를 따라서 7km, 직선거리는 3km 떨어져 있다. 아인카렘 히브리대 병원 이정표를 따라오다가 병원을 끼고 돌다보면 ‘에벤 사피르’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수도원까지는 4키로 미터이고, 에벤 사피르 모샤브 정문에서는 2키로의 거리에 있다.
아인카렘...사진 오른쪽...중간 부분이 아인카렘 하다사 병원이며, 왼쪽이 에벤 사피르 모샤브이다.
에벤 사피르 모샤브는 언덕 위에 세워진 마을이다. 마을 너머에 수도원이 있다.
사타프 전망대에서 바라본 에벤 사피르와 수도원
순례자들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동구권의 정교회 신자들 그리고 에티오피아 신자들이고 안식일이 되면 많은 유대인들이 찾는 곳이다.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1년 내내 마르지 않는 바위 속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과 세례자 요한을 숨겨줬고 엘리사벳이 요한과 함께 살았다는 동굴 바로 위에 세워져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우선 계단을 내려와 먼저 샘으로 가서 세례자 요한이 마셨을 그 물을 마시는 것으로 순례를 시작한다. 그리고 준비해 온 병에 정성껏 물을 담아간다.
수도원 정문을 들어서서
엘리사벳 성녀 무덤으로 가는 길과 세례자 요한 동굴과 수도원으로 내려가는 길
수도원은 산비탈 경사진면에 지어졌기 때문에 계단이 많다.
성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
은수자의 샘물
샘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에 모인다. 이 작은 연못은 정결례를 위한 소중한 물이다. 정교회 신자들은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고 한명씩 1.5미터쯤 되는 연못에 들어가 세례자 요한이 외쳤던 회개의 세례를 기념한다.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운동을 했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자 요한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유대교 정통파 신자들도 이곳에 정결례(mikve)를 하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었지만 2006년 30여명의 청년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운 후로는 이들의 정결례를 통제하고 있다.
정결례를 하기 위해서는 하얀 가운을 입어야 한다. 금요일과 주일은 사용할 수 없다.
맞은편에 보이는 곳은 탈의실...
정결례를 위한 연못에서 넘쳐흐르는 물은 바로 아래에 있는 연못으로 흐른다. 깊이 4미터나 되는 이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고, 주위로는 아름다운 꽃들과 코알라가 즐겨 먹는다는 거대한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어서 이곳을 방문하는 누구나가 머무르고 싶은 욕심을 내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자욱한 아침풍경
수도원 베란다에서 연못을 바라보며
아래 도로가 있는곳이 소렉 골짜기이다.
수도원 건물
연못 바로 옆에는 세례자 요한의 동굴이 있다. 길이가 6m, 폭이 3m 그리고 높이가 대략 2m되는 동굴은 성녀 엘리사벳과 아기 요한의 숨결이 묻어 있는 동굴이다. 주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에게 그의 겸손함을 간구할 수 있는 동굴이기도 하다.
왼쪽은 정결례를 하는 곳이고, 오른쪽은 세례자 요한의 동굴
세례자 요한의 동굴 입구
이 동굴 바로 위에 수도원 성당의 제대가 자리하고 있다.
수도원 성당 복도
십계명을 받는 모세
엘리야 예언자
수도원 성당 내부
제대...
세례자 요한
수도원 종탑
수도원 베란다에서 바라본 맞은편 산과 계곡
수도원 복도
수도원 주방
주방 옆 수도원 식당
수도원 식당 안의 성모님 이콘
수도원 안 마당...봉쇄구역이며, 피정자들에게만 개방한다.
피정집 주방
단체 피정집
개인 피정집
개인 피정집
피정집 내부
피정집 내부
숲속에 있는 자연 동굴...
광야의 삭막함보다는 풍요와 생명이 느껴지는 이곳이지만 밤이 되면 마치 유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마르 1,3; 마태 3,3 ; 루카 3,4 요한 1,23 참조)처럼 적막을 깨고 울어대는 자칼과 여우 등의 뭇 짐승들이 있어 고독을 더욱 느끼게 한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 자칼의 모습...
마르 1,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고요와 침묵이 있는 세례자 요한 광야 수도원은 ‘은수자’의 전승을 이어가는 관상과 기도의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유대교뿐만 아니라 정교회 등 타 종파들과 그리스도 교파들에게 활짝 열려진 친교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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