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가가 전하는 갈릴래아 활동기의 마무리 설교
-박상대 신부-
루가복음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 광야유혹의 40일을 보낸 후 자신의 고향인 나자렛과 갈릴래아 지방을 거점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셨음을 보여준다.(4,14)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대목(이사 58,6)을 빌려 메시아로서의 자기 신원(身元)과 사명(使命)을 명백히 선포하신 점이다.(4,16-22)
따라서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신원과 사명을 그 내용과 함께 구체적으로 밝혀나가는 것이 루가복음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숙제의 핵심은 메시아이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루가는 자신의 숙제를 예수님의 직접적인 활동으로 하나씩 풀어간다.(4,31-9,50)
우선 이 땅에 도래한 메시아의 활동은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을 몰아내는 구마기적과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병자치유기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가르치고 그들 가운데서 뽑은 사도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미래의 선교를 준비한다.
급기야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교의 지도층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파견되어 예수의 활동과 가르침을 예의주시한다. 와중에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구약율법의 근본정신을 새로 세우고 죄의 용서를 발설(發說)한다. 그들에게 예수가 걸림돌이 되는 만큼 예수의 신원은 서서히 밝혀진다.
결국 제자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베드로가 스승 예수를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고백한다.(9,18-21) 그러나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은 정작 예수의 참된 신원과 평행선을 긋는다.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자기 신원에 대한 확신과 사명에 대한 다짐은 두 번씩이나 수난과 죽음의 예고로 이어지는데 제자들은 이를 간파하지도 물어보지도 못한다.(9,45)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두 번째로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를 발설한 목소리의 메아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누가 제일 높으냐.’는 문제로 다툼이 있어난다.(46절) 이처럼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둘 이상 모인 곳에 누가 더 높은가를 가름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늘 있는 일이다. 어떤 공동체든 그 안에 리더가 있기 마련이며 또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공동체가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창설되었느냐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공동체라면 이는 필시 예수의 정신을 담보(擔保)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에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신 것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회의 힘없는 자를 의미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예수를 받아들임은 곧 예수를 파견한 아버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 가운데 제일 낮은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원칙이 세워진다.(48절)
계속두면 스승의 책망이 더 이어질까 두려웠던 것인가? 요한이 나서서 엉뚱한 말을 던진다. 예수의 제자단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49절) 사실 이 지적은 제자들의 질투와 투기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제자들에게도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가 주어졌다.(9,1) 그러나 제자들은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이는 9장 40절을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을 따로 데리고 산에 올라가 계신 동안에, 악령이 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데려와 제자들로 하여금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했던 것이다.(9,40)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니 막지 마라.”(50절)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는 쫓아내었으나 그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로써 예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서로 다른 공동체가 있을 수 있음이 암시되었다. 여기까지가 루가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루가 4,16-9,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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