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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기도해 줄 사람이 있으십니까? / 이기양 신부님 ~

기도해 줄 사람이 있으십니까?


손발이 쑤시는 것을 보고 곧 비가 올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는 신경통 환자들을 종종 봅니다.

일기(日氣)가 우리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체험하고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를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험을 토대로 한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지지요.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루카12,54-55)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징조를 보고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 정작 당신의 활동을 보면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것을 식별하지 못하는 것을 질책하시지요.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12,56)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점이라도 쳐서 앞날을 예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권위 있는 말씀들,

또 모여드는 군중들을 보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거부하는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징조들이 예수님께서 당연히 메시아임을 깨닫게 해줌에도 불구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유다 지도자들은 끝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루카12,58-59)고 말씀하십니다.


고소한 자와 법정에 가게 되면 당연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설명하시면서 더이상 고집을 부리지 말고 드러나는 징조로 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치닫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진리 앞에 고집부리거나 나의 선입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오늘 복음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면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생전에 지은 우리의 죄와 벌은

용서와 화해로써 기워 갚을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만약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도 없어지지 않는 죄가 있다면

죽은 후에라도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루카12,59)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른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가며,

보속할 것이 남은 사람은 연옥에 간다고 들어 알고 있으며 믿고 있지요.

연옥에서 죄의 대가를 다 치르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살아 생전의 용서와 화해가 죄를 없애는 길이고

연옥 벌을 줄이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연옥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수시로 묵주기도를 하고 화살기도를 바치며,

매번 식사 후에는 반드시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지요.


이렇게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나의 기도를 통해서 연옥 영혼의 벌이 사해지고

천국에 가기를 기원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생전에 죽은 사람을 위하여 봉헌하고 기도하는 이 모든 행위는

내가 죽어서 연옥에 갔을 때 나를 위한 기도로 다시 응답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생전에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한 번 묻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사람이 있는가??

내가 죽었을 때 기도해 줄 사람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자식이 있더라도 냉담을 하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영원한 생명에 관심이 없다면

내가 죽어서 아무리 연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더라도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었을 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줄 사람이 있고 없음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녀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죽은 후에 기도할 수 있고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자녀가 냉담을 하거나 아예 신앙을 갖지 않거나 신앙이 다를 때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살아생전에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죽은 후에 나를 위해서 기도드리고 또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줄 사람이 많은 것처럼

축복 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루카12,59)

그렇습니다. 살아생전에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내가 지은 벌을 없애고,

혹시라도 남은 부분이 있다면 나를 위해서 기도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자녀가 나를 위해서 기도해줄 수 있으며 나의 기일에 연도를 바치고 미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위로이자 행복일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삶을 평상시에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고 자식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