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성수와 세례수. 언뜻 그 물이 이 물이고 이 물이 그 물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저도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는 '앗, 그 차이란...?' 하며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그 둘이 헷갈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 두 종류의 물을 축성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기도문이 다르니 분명 다른 성격의 물이 맞습니다. 전례에 입각해서 구분하자면, 성수는 "준성사"(축복, 축성, 구마 등)를 위한 것이고, 세례수는 세례"성사"를 위한 것이 됩니다. 성수는 그 사용 목적에 따라 그만큼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놓여 있습니다. 반면에 세례수는 세례성사라는 특별한 사건을 위해서만 사용되기에 일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수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예를 들어 보면, 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으며 개인을 정화하고 축복합니다. 미사 초반에 성수를 축복하여 회중들에게 뿌림으로써 참회 예절('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성당 밖에서도 사람을 축복하거나 사물을 축복할 때, 집이나 사무실을 축복할 때 성수를 뿌립니다.
| | | ▲ 신자들이 받아갈 수 있도록 성당 사무실에 비치한 성수. ⓒ왕기리 기자 |
성수는 미사 때 또는 미사 외에 필요할 때마다 사제나 부제가 축복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수를 많이 만들어 장기 보관할 때는 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소금을 넣기도 합니다. 반면에, 세례수는 세례성사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성야 미사 중에 있는 세례예식 때 혹은 일반적인 세례성사 전에 사제는 세례수 축복 기도문을 바치며 세례수를 축복합니다. 부활성야 미사 중 세례수 축복은 특별히, 부활초를 물에 담갔다가 들어올리면서 하게 됩니다. 부활성야가 아닌 다른 때에 이뤄지는 세례수 축복은 성사 집전자가 오른손을 물에 집어넣으면서 축복합니다.
세례성사를 거행하고 세례수가 남은 경우에는 성수축복 기도문을 통해 성수로 축복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유(축성 기름)는 일 년에 한 번씩만 만들어집니다. 언제냐 하면 해마다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 오전에 주교와 사제단이 모여 봉헌하는 성유 축성 미사 때입니다.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에 사제들이 모여 함께 미사 봉헌을 하고 사제로서 서원을 갱신합니다. 주교는 미사 중에 세 가지 종류의 기름을 축성하고, 사제들은 이 기름을 나누어 가지고 갑니다. 이렇게 교구 내 각 본당과 수도회 공동체로 가져간 기름은 보통 세례와 병자성사 때 사용됩니다. 여기에 덧붙여 주교는 견진과 성품(신품) 성사를 위해서도 축성기름을 씁니다.
기름의 종류가 세 가지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모든 성유의 기본 요소는 일반적으로 올리브기름(식물성 기름이면 다른 종류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입니다. 기름의 종류가 나뉜 것은 성사의 내용이 다르기에 사용되는 기름도 구분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기름의 종류를 보자면 우선, 예비신자 성유(O.C: Oleum Cathecumenorum)가 있습니다. 사제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고, 교회의 일원이 되기를 청하는 예비신자에게 예식을 통해 발라 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크리스마 성유(S.C.: Sanctum Chrisma)라고 부르는 축성된 기름이 있습니다. ‘크리스마’라는 단어에 이미 ‘기름으로 축성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그리스도가 '축성된 기름 부은 사람'이란 뜻이니까요.) ‘크리스마 성유’라고 하면 의미상 ‘성유 성유’ 하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하지만 크리스마가 그리스도 덕에 거의 고유명사처럼 쓰이는지라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크리스마 성유로 불러 왔습니다. 이 기름은 세례, 견진, 성품성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크리스마 성유는 다른 두 가지 성유와 달리 기름에 향을 풍성히 하려고 발삼을 첨가하여 축성합니다.
마지막으로, 병자성유(O.I.: Oleum Infirmorum)가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병자성사 때 사용됩니다.
| | | ▲ 성유 축성 미사에서는 한 해 동안 교회에서 사용할 기름을 축성한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
기름은 예식을 통해 사람을 온유하게 하거나 굳세게 만드는 데 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기름(자동차 연료 말고)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따져 보면 기름이 우리 삶에 주는 유익함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쳤을 때 상처 부위에 바르는 연고처럼 말입니다. 축성된 기름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 하느님께 향하게 하고, 악의 유혹에 대항할 힘을 주며, 성령이 주시는 치유의 힘을 통해 건강을 청하는 행위에 사용되는 은총의 상징적 요소인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을 사용하기에 향을 맡아 보면 발삼을 첨가한 크리스마 성유를 빼고는(향에 민감하지 못한 분들은 그것마저도 헷갈립니다.) 어떤 기름이 병자성유고 예비자성유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병에 ‘O.C., S.C., O.I.’라고 써서 구분해 놓아야 합니다. 물론, 저 표시가 어떤 성유의 약자인지 기억한다는 걸 전제로 말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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