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9월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 사가
San Matteo Apostolo ed evangelista
St. MATTHEW the Apostle
St, Matthaeus
Apostle of Ethiopia
Matteo = uomo di Dio, dall’ebraico(man of God, from the Hebrew.gift of God )
은행가, 회계사,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
문장-마태오사도. 순종.용기.인내.
마태오(1세기경)가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가파르나움의 세리였는데,이 직업은 그 당시에 평판이 지극히 나빴다.
그는 갈릴래아 사람으로 레위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60-90년 사이에 기술된 제1복음서의 저자로서
아람어(아라마이아어,히브리어)로 기록하여
동료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St Matthew’s Gospel-MINIATURIST, German.
1235-40. Illumination on parchment, 33,5 x 25 cm.Stadtische Sammlung, Rathaus, Goslar
*마태오 복음 저자 :
16세기 까지는 세리 마태오라고 생각했으나,
성서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다계 크리스챤이며 율사출신 사람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80-90년경에 유다계 크리스챤들을 위해 집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동방으로 가서 선교했는데,
에디오피아에서 순교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페르샤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성 마태오는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베다 사제의 강론에서
(Hom. 21: CCL 122,149-151)
예수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고는 제자로 택하실 마음으로 바라보셨다.
"예수께서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라.’ 하고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그를 육신의 눈으로 보시기보다 자비심에 찬 영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한 세리를 가엾이 여기시고는 제자로 택하실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나를 따라오라." 하고 부르십니다.
"따라오라" 즉 나를 "본받으라." 발걸음의 동작으로써가 아니라 생활의 변화로써 따라오라.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거니신 것처럼 거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세리가 주님의 첫 분부를 듣고서 세상의 거래와 재화를 뒤로 두고
누가 보아도 재물이란 조금도 없는 주님의 단체에 가담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실 외적인 말로써 그를 부르신 주님은 내적으로 즉 보이지 않는 은총으로써 당신을 따르라고 가르치시어
세상의 물질을 빼내시고는 하늘에서 썩지 않는 보화를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 마음에다 영적 은총의 빛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한 세리의 귀의는 수많은 죄인들과 세리들에게 귀의와 용서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일의 참되고도 위대한 표지였습니다.
즉 이방인의 스승이요 사도가 되려 하는 마태오는
자기 귀의의 첫 순간부터 많은 죄인들의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갖게 된 첫 순간에서 마저,
자신의 덕행에 진보를 이루면서 성취코자 하는 그 복음 전파의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그날에 생긴 일의 뜻을 좀 더 깊이 파악하고 싶어한다면,
마태오가 이 지상에 있는 자기 집에서 주님께 물질의 잔치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신앙과 사랑으로써 자기 마음의 집에서 영적 잔치를 마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다음 말씀으로 이 사실을 증언해 주십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
은밀한 부르심이건 드러난 부르심이건 그분의 부르심에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바를 행할 때,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그 문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 그분은 들어오시어 우리와 더불어 음식을 드시고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음식을 먹게 됩니다.
그분은 당신 사랑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뽑으신 이들의 마음 안에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 현존의 빛으로 그들을 양육하시고 그들이 언제나 천상에 대한 갈망 가운데 전진하게 하시고
또 한편 그분은 그들이 당신을 위해 바쳐 드리는 덕행의 잔치를 당신 자신도 즐거워 하시는 듯합니다.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 CARAVAGGIO.
1599-1600.Oil on canvas, 322 x 340 cm.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마태오는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권력을 위해 자기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을 하였다.
비록 로마인들이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중요한 관심은 자기의 돈주머니였다.
그들은 세금 징수 청부인이 거뒤들인 금액에 관해서는 마음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금 징수 청부인들은 ’세리’로서 알려졌고, 그들 동족들에게는 반역자로 미움을 받게 되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을 ’죄인’들로 취급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같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을 가까이 부르셨다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마태오가 자기 집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푼 것은 예수께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복음은 ’많은’ 세금 징수인들과 ’죄인들로 알려진 사람’이 그 만찬에 왔다고 전한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더욱 더 충격을 받았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의식과 예배를 멀리하신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웃 사랑이 한층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신약에서는 마태오에 관한 다른 특별한 사건들이 보이지 않는다.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만 직업으로 판단하여 사도직에 적합할 만큼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예수께서는 교회의 반석 중 한 사람으로 뽑으셨다.
그러나 그는 예수께서 부르러 오셨을 때 자기가 죄인들 중의 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데 아주 정직했다.
예수께서 그를 보셨을 때 그는 진리를 인식하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랐다."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무서운 사건 이후에,
부활한 예수께서 사도들을 부르셨던 산으로 함께 가고 있는 마태오를 상상한다.
"예수님을 보자. 의심했던 모든 사람들이(분명히 이것은 그들 모두를 가리킨다.) 충성을 맹세했다.
예수께서는 앞으로 오셔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그분이 차례 차례로 한 사람씩 쳐다보시고, 마태오는 귀를 기울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흥분하는 것을 상상한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는 결코 그날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활과 말을 통해 기쁜 소식을 증거했으며
우리의 신앙은 그의 증거와 동료 사도들의 증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마태오
라틴어 Matthaeus
복음사가. 축일은 9월 21일. 12사도의 한 사람(마태 10:3, 마르 3:18, 루가 5:27).
마르코 복음서 2장 14절, 루가 복음서 5장 27절의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완전한 성명은 '레위 마태오'이다.
알패오(Alpheus)의 아들(마르 2:14)이고, 예수에게 불려가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가파르나움의 관리였으며(마태 9:9),
주를 따르라는 소명을 받은 후 자기 집에서 예수를 위해 연회를 베푼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했던 것 같다(루가 5:29).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그 장소는 에티오피아·페르시아 ·파르티아(Parthia)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리스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150년경-215년경)에
의하면 마태오는 채식주의자였으며, 12사도는 아무도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에 반해서 다른 외전(外典)의 마태오 행록에는 화형(火刑), 돌에 의한 순교로 언급하고 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로부터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Salerno)로 옮겨졌다.
축일은 라틴교회에서 9월 21일, 동방교회에서는 11월 16일, 코프트교회에서는 10월 9일이다.
복음사가로서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인간(후에는 날개가 달린 천사)으로 상징되고 있으며,
사도로서는 책·칼 또는 창이 표호(票號)가 되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CARAVAGGIO.
1602.Oil on canvas, 292 x 186 cm.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입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붓으로도 전교를 하여 복음 사가(福音史家)라는 칭호를 받은 분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예수의 애제자(愛第子) 성 요한 사도요,
또 한 분은 4복음서 중 제일 앞에 나오는 복음서를 저술한 성 마태오 사도이다.
마태오의 옛 이름은 레위로 유다인인데,
당시 그나라를 점령한 로마 제국의 세금 수금 관리로
주님의 제2고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가파르나움 세관에서 근무했다.
그 당시 세무 관리(稅務官吏)들은 규정된 세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부당한 행위를 하며
사람들을 착취해 사용을 채우는 직업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세리를 독사와 같이 싫어했으며,
조국인 유다를 배반하는 자로 취급했고, 때로는 세리와 죄인을 합쳐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마태오도 다른 세리와 같이 부정한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재산을 많이 모았고, 제자들 중에서 가장 학문과 사교에 뛰어난 분이었다.
복음서에서 알 수 있는 점은 그는 다른 복음 사가와는 달리
당당히 자기 전직을 명기한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겸손지덕이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다.
마태오가 언제 주님과 친근해졌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주님께서 가파르나움 지방을 자주 왕래하셨으므로 아마도 공생활 초기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어떤 날 그는 여전히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주님께서 지나가시며 "나를 따르라"는 고마운 말씀을 하셨다.
마태오가 전부터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졌었는지는 모르나
"나를 따르라"는 이 한마디 말씀에 즉시 수입이 많은 세리직을 버리고 그 제자의 일원이 되었고,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마태오라고 개명했다.
이는 ’주님의 은덕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그 후 그가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기념으로 예수와 그의 제자는 물론
지식인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바리사이들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의 스승은 어찌하여
비난받는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를 같이 하느냐고 비난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합니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하시며 책망하신 것은 바로 이때의 일이다.
마태오는 모든 고난을 주님과 함께 했으며,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그는 다른 제자와 더불어 주님의 부활, 승천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성령을 받은 후 9년간 유다 지방에 머물러 전교를 하고
42년에 타국으로 전교를 떠나기 전에 복음서를 저술하고,
사도들의 설교로 입교한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고자 했다.
이 복음서는 아람어로 저술되었는데 이는 당시 유다인들이 잘 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전교하기 위해 이디오피아로 향하여 복음을 전파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그 어느 곳에서고 무수한 사람을 개종시켰으며,
에우지포왕의 왕자를 중병에서 기적으로 구출한 결과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까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하며,
이제피아라는 공주는 동정으로서 하느님께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힐타코라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 이피제이아의 미모를 사랑하고 마음에 두어
그녀를 왕비로 취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히 이를 거절하자 왕은 대단히 분노하며
그것이 마태오 사도의 술책이 아닌가 생각하고 이에 증오심을 품고
사도를 잡아 갖은 고문과 형벌을 가한 후 그를 땅에 못박아 죽게 했다.
때는 90년경이며, 그의 유해는 후에 남 이탈리아의 살레르모에 이송되어 오늘날까지 그곳에 잘 보존되어 있다.
Saint Matthew and scenes from his Life-ORCAGNA
c. 1367.Tempera on wood, 291 x 265 cm.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MATTHEW the Apostle
구약성경의 열두 소예언서 중 다섯 번째 자리에 배치된 요나서는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다른 예언서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일반적으로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예언자에 대한 전기나 자서전적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은 상당히 미미하다. 그런데 요나서는 ‘요나’(Jonas)라는 이름을 지닌 예언자가 한 가지 사명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한다. 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포한 예언의 말씀은 실제로는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라는 한마디뿐이었다(3,4). 요나서에 의하면, 요나 예언자는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1,2)라는 말씀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피해 니네베 반대쪽으로, 당시 사람들이 세상의 서쪽 끝이라고 생각했던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배에 올라탔다. 주님은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키셨다. 뱃사람들은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들을 바다로 내던지며 재앙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소용없자 그들은 변고의 원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제비를 뽑았다. 그래서 제비를 뽑으니 배 밑창에서 잠을 자다 선장에게 이끌려 나온 요나가 뽑혔다. 그는 자기에게 모든 탓이 있음을 순순히 고백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선원들은 “뭍으로 되돌아가려고 힘껏 노를 저었으나,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져 어쩔 수가 없었다.”(1,13) 결국 그들은 주님께 자신들에게 죄를 지우지 말아 달라고 청하며 요나가 청한 대로 그를 들어 바다에 내던졌다. 그러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 사람들은 주님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주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서원을 하였다.”(1,15-16) 주님께서는 곧 큰 물고기를 시켜 바다에 떨어진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사흘 낮과 밤을 물고기 배 속에 있으면서 요나는 주 하느님께 기도하며 감사의 시편을 노래하였다.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승의 배 속에서 제가 부르짖었더니 당신께서 저의 소리를 들어 주셨습니다. … 그러나 저는 감사 기도와 함께 당신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제가 서원한 것을 지키렵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2,3-10)
주님께서는 사흘 뒤에 그 큰 물고기에게 요나를 육지에 뱉어내도록 명령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요나에게 말씀하셨는데, 처음과 같은 말씀이자 사명이었다. 요나는 이번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니네베로 가서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3,4) 하고 외쳤다. 그러자 니네베의 임금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참회하며 열심히 기도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그런데 요나는 하느님의 이런 처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니네베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과 그러한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요나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요나는 주님께서 자비하신 하느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니네베 사람들이 예상과는 달리 재빨리 회개하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자, 요나는 오히려 화를 내며 자기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성 밖 동쪽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그 그늘에 앉았다. 주님께서 그 위로 아주까리 하나를 자라게 하시어 그늘을 드리워 고통스러운 더위에서 구해주셨고, 요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이튿날 동이 틀 무렵 벌레 하나가 아주까리를 쏠아 시들게 하고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며 뜨거운 동풍까지 불자, 요나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4,8)라고 투덜거렸다. 주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4,10-11) 요나서는 하느님의 이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요나서가 역사서가 아님은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저자와 저작 시기도 명확하지 않다. 대체로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제2 이사야의 영향을 받아 저술된 것으로 추정한다. 요나서의 저자는 기존의 전통적 예언자와는 다른 요나의 모습을 통해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요나가 만난 뱃사람들, 특히 니네베 사람으로 대표되는 이민족 · 이교도들의 모습도 기존에 유다인이 생각하던 것과 아주 달랐다. 그들은 요나를 인간적으로 대하며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고, 폭풍이 멈춘 뒤에는 요나의 하느님께 경배를 드렸다. 요나 예언서는 이런 내용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기존의 관습과 선입관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지금까지의 좁은 안목을 버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대양과 대도시 니네베처럼 전망을 넓혀 세상과 하느님을 생각할 것을 촉구하였다.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곧 바다와 뭍을 창조하시고(1,9) 이민족들의 하느님도 되시는(3,8 참조) 한결같으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를 초월하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을 실현하도록 당신 백성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요나서는 독특하지만, 하나의 예언서로서 다른 예언서들과 자리를 같이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1일 목록에서 예언자 성 요나를 언급하며 그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탈출한 것은 복음에서 주님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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