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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이콘) 산 세베리노의 성 피치 파크 / 메르체대의 성모 마리아 /성 제라르도 사그레도 기념일 +++

 

 

축일: 9월 24일

산 세베리노의 성 파치피코 사제,  Reformati

 

San Pacifico da Sanseverino Marche

ST. PACIFICUS of San Severino

Born :1 March 1653 at San Severino
Died :24 September 1721 at San Severino
Beatified :4 August 1786 by Pope Pius VI
Canonized :26 May 1839 by Pope Gregory IX
Pacifico = mansueto, mite, significato evidente(mansueto, mild, meant obvious)

Name Meaning:peace (=Pacific)

 

 

산 세베리노의 성 파치피코 수도자
(Pacifico of San Severino; 1653~1721년)


성 파치피코는 안토니오 디비니와 마리아 브루니의 아들로서 세례명은 카를로 안토니오였다.
다섯 살 때에 양친을 잃은 그는 거칠고 난폭했던 외삼촌댁에서 자랐다.
외삼촌은 그를 마치 하인인 양 마구 다루었으나
어린 파치피코는 17세가 될 때까지는 오로지 참기만 하였다.

1607년, 그는 포라노에 있던 프란치스코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파치피코란 수도명을 받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그는 25세 때에 사제가 되었으며,
회원들에게 2년간 철학을 가르치다가, 인근 마을이나 교회가 없는 곳을 골라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강론은 지극히 부드럽고 단순했음으로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넉넉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인하여
그는 눈이 멀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조차 불구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만 전념하다가 운명하였다. 
그는 사보이가 터키인들을 무찌르고 승리하리라고 예언한 것이 이루어져 큰 공경을 받았다.


또 그는 미사 중에 자주 탈혼에 빠지기도 했는데,
때로는 이것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The Crucifix of San Damiano

 

 

파치피코는 1653년 3월 1일에 안코나 주의 산 세베리노에서 태어났다.

안또니오 디비니와 마리아 브루니의 아들로서 세례명은 까를로 안또니오였다.

다섯 살 때에 부모를 여의고 백부의 밑에서 자란 그는 고생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독신이었던 백부는 가사의 일체를 두 명의 가정부에게 맡겼는데

웬일인지 그들은 파치피코를 싫어하고 매사에 모욕과 조소로써 심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미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한 마디의 불평도

백부에게 말하지 않고 일체를 감수 인내하며 가정의 평화를 유지했다.

외삼촌은 그를 마치 하인인 양 마구 다루었으나 어린 빠치피코는 17세가 될 때까지는 오로지 참기만 하였다.

파치피코는 평화의 사자(使者)라는 뜻인데 과연 명실공히 뜻이 통하는 바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보속하는 정신을 가진 그는 여러 행동에 있어서도 사람을 감탄케 할만한 일이 종종 있었다.

그는 포라노에 있던 프란치스꼬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바치리꼬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가 18세의 어린 몸으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평소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부터 신앙이 두텁고 열심했던 파치피코는 수도자가 된 후는

더 한층 분발해 덕행의 길로 매진하고 회칙이 명하는 고행은 물론이고

자발적으로 더 많은 단식재와 극기를 실행하며

청결, 청빈, 순명, 인내, 겸손 등 모든 덕을 닦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계속했다.

 

더구나 수도원에 들어간지 8년만에 서품 받아 신부가 된 후에는

더욱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불태워 세라핌 천사를 연상케 했고

미사를 드릴 때는 탈혼이 되어 얼굴은 광채 찬란하고 몸은 공중에 떠있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도 들여다보고 장래를 예언하는 힘도 가졌으니,

이런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완덕에 진보한 성인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파치피코는 죄인을 회개시키며 신자들의 열심을 북돋아 주는데 있어

어떠한 희생도 사양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사제로서의 성무를 이행하기를 5,6년

이것도 하느님의 성의였음인지, 그는 병석에 눕게 되어 이후 30년이라는 장수한 세월을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사제로서의 할 일을 조금도 하지 못했으나 원망하지 않고,

육신의 고통이나 정신의 고민을 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고통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며 부자유스러운 중에도 자유의 천지를 발견하고 있었다.

이런 탄복할만한 희생에 의해 구원된 영혼은

사제직을 제대로 이행함으로써 구원된 영혼의 수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파치피코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병석을 십자가로서 달게 참아 받으며

쓸개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고 정성되이 병자 성사를 받고,

1721년 9월 24일을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의 전구로 인한 기적이 많았으므로 1786년에는 복자위에,

1839년에는 성인품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이콘]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18세기.32.5 x 27cm.중앙러시아.

 

이 성화(Icon)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성화의 화면은 표면에서 약간 뒤로 들어갔으며 그 가장자리 윗부분은 반원형을 이룬다.

 

십자가는 목판의 한 중앙에 위치한다.

십자가의 긴 횡목 위에는 두 명의 비천하는 천사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그들의 손은 수건으로 덮여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아랫 횡목(橫木) 위에 서있고,

그 밖에 십자가의 수직목(垂直木) 양옆에는 창과 식초를 적신 막대기가 꽂혀 있다.

 

십자가 아래에는 골고다의 동굴이 열려 있으며 아담의 해골이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구원해야 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웠다고 전한다.

 

십자가의 왼쪽에는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 안나가 서있다.

오른쪽에는 그리스도의 애제자였던 성 요한과 개종한 장교 롱기니오스가 서있다.

여기에 묘사된 장면은 낡은 성벽 앞에서 전개되었다.

 

 

 

축일: 9월24일

메르체데의 성모마리아

Beata Vergine Maria della Mercede

Our Lady of Ransom

Feast of Our Lady of Mercy

 

 

1218년,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꿈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페나포르트, 야고보, 아라고나 왕에게도 발현하셨고

많은 신자들이 회교도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걱정하시면서 구해주라고 청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메르체데의 수도회.Order of Our Lady of Mercy가 창설되었습니다.

 

 

1218년 8월 1일, 성모께서 베드로 놀라스코에게 발현하시어

회교도의 노예가 된 그리스도교를 구출하는 수도원을 창설하라고 분부하셨다.

 

다음 날 그가 야고보 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하니 왕도 똑같이 그러한 성모의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조금전 부터 페냐포르트의 라이문도라는 성인도

왕에게 초대를 받아 아라곤에 와 있었는데 그분도 성모 마리아로 부터 같은 말씀을 받았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된 세 사람은 대단히 놀라며

바르셀로나의 주교 베렌가리오를 방문해 자세한 말씀을 여쭙고, (8월10일?)

8월15일을 기해 ’메르체데의 성모 마리아회’라는 새 수도원을 창립했다.

 

 

이보다 벌써 20년 전에 바르셀로나에서 기사 여러명이 역시 같은 목적을 위해

한 신심회를 세운 일이 있었는데 베드로 등은 그 회의 규율을 기초로 새로운 회칙을 작성하고

즉각 13인의 동료들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수도원이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인가를 얻은 해는 1235년이었다.

 

1212년 사라센들은 유명한 톨로사의 격전에서 패배해

거의 스페인에서 소탕 당하고 겨우 남쪽에 있는 그라나다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베드로는 수도원 창립 후 즉시 그 지방에 가서 불쌍한 노예 400명을 위해 대금을 내고

그들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었다.

 

베드로 놀라스코는 또한 "노예인 신자들에게 자유를 줘야 할 때,

만일 필요하다면 자신을 인질(人質)로 바칠 각오를 가져야 한다."라는

회칙의 제4서원에 따라 북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대신해 쇠사슬에 결박되어 투옥 당한 일도 있었다.

 

그때 사라센들은 그를 죽이려고 돛대도 키도 없는 작은 배에 태워 바다로 띄워 보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고난과 피로와 노령으로 매우 몸이 허약해져서 수도원 총장직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수년간의 여생을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보속으로 지냈다.

이와같이 세상에서 많은 공적을 세운 성인은 1256년, 마침 성탄절 밤에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는 1628년에 시성되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St. Peter Nolasco 축일:1월28일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축일:1월7일

 

 

 

Order of Our Lady of Mercy

Founded:10 August 1218 at Barcelona, Spain

Founder:Saint Peter Nolasco

 

 

 

 

 

 

축일: 9월 24일

성 제라르도 사그레도

San Gerardo Sagredo Apostolo d’Ungheria

St. Gerard Sagredo

Born :early 11th century at Venice, Italy
Died :stabbed to death with a lance in 1046 at Buda; body thrown into the Danube River

 

 

 

 

베니스 태생인 그는 산 죠르지노 마쪼로의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여 볼로냐에서 수학하였으며,

뛰어난 학덕을 소지하고 있었고, 원장이 되었다.

그는 성지에서 고적한 은수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다가 악천후로 인하여 배가 달마시아 해안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헝가리에 정착하게 되었고, 더우기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020년경, 헝가리의 국왕 성 스테파노는 그를 자신의 왕자인 에메릭의 가정교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후 7년 동안은 백코니 숲속의 은둔소에서 고적한 생활을 하다가,

1035년 국왕이 크사나드 교구를 설정하고

그를 첫 주교로 임명하였으므로 또 다시 세상으로 나와서 활동하였다.

 

그의 복음 선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성 스테파노 국왕이 1038년에 서거함과 아울러 이방인들이 물밀듯 쳐들어 왔을 때,

제랄도는 부다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그는 베니스의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헝가리의 사도’Apostle of Hungary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우표로 보는 성인전(최익철신부)에서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국왕 축일:8월16일

*헝가리의 성 에메리코 축일:11월4일

*성녀 지셀라 축일:5월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