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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 성녀 데레사 쿠데륵 / 성 엘제아리오와 복녀 델피아 부부/ 성 치프리아노와 성 유스티나 순교자 기념일 +++

 

Beheading of Saint Cosmas and Saint Damian-ANGELICO, Fra.

1438-40.Tempera on wood, 36 x 46 cm.Musee du Louvre, Paris

 

축일: 9월 26일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순교자  

Santi Cosma e Damiano Martire

Sts. Cosmas et Damianus, M
Sts. Cosmas and Damian
Saint Cosmo and Saint Damian
Born:in Arabia
Died:tortured and beheaded c.287-303; relics at Cyrus, Syria
Canonized :Pre-Congregation

Cosma = ben ordinato, bello, dal greco (very tidy, beautiful)
Damiano = domatore, o del popolo, dal greco (domatore, or of the people)
의사,약제사,이발사의 수호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아라비아 태생으로 쌍둥이 형제였다고 전해오는데,

그들의 전기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므로, 전설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칠리치아의 애게애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의료 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명의라는 높은 칭송을 듣고 살았다.

또한 열렬한 크리스챤이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칠리치아의 집정관 리시아느 앞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신앙 때문에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이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이던 안티모, 유프레삐오 그리고 레옹씨오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이발사의 수호자이고, 루가 복음사가 다음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초세기 문헌을 보면, 고스마와 다미아노의 무덤이

시리아의 키로스에 있었고 그들을 기념하여 거기에 대성당을 건립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 후 그들에 대한 공경심은 로마에까지 파급되고 거기에서 전 교회로 파급되어 나갔다.

 

 

 

303년 2월 24일 교회에 대한 가장 잔인한 박해자라고 부를 수 있는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크레시아노는

돌연 칙서를 내려 전국에 있는 그리스도교 성당을 불사를 것과 즉각 배교할 것을 엄명했다.

과거 40년간은 교회에 대한 별다른 탄압이 없어 교회 활동이 활발해져

상류 계급의 명사들이며,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허다하게 그리스도교를 믿고 각지에 성당을

많이 세웠는데 갑자기 내려진 이런 금교령(禁敎令)에는 누구 하나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박해의 불길이 일기 시작한 곳은 제국의 수도인 니코메이다가 있는 소아시아 지방인데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는 그때 순교한 형제이다.

이 두 형제는 아라비아의 명문가 출신이며 어머니 테오다타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신앙이 두터운 이들이었다.

이 두 형제는 의사로서 병에 허덕이는 이들을 구해 줄 뿐 아니라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주며

인술의 본령을 발휘했다.

그리고 환자의 육신보다 영혼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이 암흑에서 진리의 빛을 받도록 열심히 노력했으므로

하느님께서도 이 박애의 의사들을 사랑하셨음인지,약보다는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된 기적을 가끔 일어나게 하셨다.

 

 

그들의 자선과 친절에 대한 평판은 날로 퍼져 그들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물론이요,

일반인에게 까지 경애와 칭찬을 받게 되었는데 이에 반대로 그런 호평을 시기하는 자들의 미움도 받았다.

그러므로 디오클레시아노 황제의 금교령이 내려지자 고스마와 다미아노는 즉시 잡히게되어

소아시아의 남부인 칠리치아 주 애게애의 총독 리다아스 앞에 끌려가 갖은 형벌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본래 신앙이 굳은 두 형제인지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런 그릇된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총독은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들의 목을 베었으나 본래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듯이 영광스러운 순교를 한 후에도 천국에서 더욱 많은 은혜를

고민에 싸여 있는 형제 자매에게 내려 줌으로써 더욱 많은 존경과 신뢰를 받게 되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자면 그들이 순교한 후 백년이 지나서

유스티니아노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다 그들을 위한 웅장한 성당을 건축했고,

또 교황 펠릭스 4세는 두 성인을 위한 거대한 성당을 로마에 건립하고

그 제대 앞에는 화려한 모자이크의 사슴을 그려놓고 거기에 황금의 대문자로

’이 대리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전은 순교의 영광을 누린 두 성인에 의해

더욱 광채 찬란하도다’라고 기록했으며,

미사 전례 중 거양 성체 직전에 위대한 순교자들의 전구를 구하는 경문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를 첨가했으니

이 모두가 성인들의 공훈을 찬미하고 그들을 경모하는 데서 된 것이다.

두 성인은 오늘날 의사와 약제사들의 수호 성인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4세기 초경 디오클레시아노 박해 때 시리아에서 순교했다는 것 이외에

그들에 관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묘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유스티아노 황제에 의해 확장되었다.

두 성인에 대한 공경은 동서양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콘스탄티노플에 유명한 성당이 세워졌다.

그들의 이름은 아마 6세기경쯤 미사 전문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아라비아에서 쌍둥이로 태어났고,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청렴한 사람들’로 불리어 동양에서는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그같이 뛰어난 사람들이 박해중에 눈에 띄지 않게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은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거로 그분의 기적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이 어떤 다른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병을 간단히 치유하면서 예수께서 쏟으시는 관심을 때때로 지나쳐 버리고 만다.

 

’거기에서 나오는’힘은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역사 속에 결정적으로 뛰어드셨다는 하나의 징표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그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또 하느님의 구원은 몸과 영혼이 하나로 맺어진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 전체를 위한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1고린 6,19-20)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329,1-2: PL 38,1454-1455)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가로 얻은 순교자의 죽음은 보배롭습니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업적은 방방곡곡에서 교회를 꽃피게 합니다.

우리가 방금 노래한 시편의 다음 말씀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우리 눈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보배로운가."

그 죽음은 우리가 보기에 보배롭고 또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이므로 주님 자신이 보시기에도 보배롭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죽음들의 대가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숱한 죽음들을 사들이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죽지 않으셨더라면 하나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 즉 우리 구원의 시각이 다가올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십자가 상에서 주님은 엄청난 거래를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군인이 창으로 당신의 늑방을 펼치어

그 상처에서 온 세상의 대가가 흘러 나올 때, 우리 속량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신자들과 순교자들이 속량되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충실성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그들이 흘린 피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지불된 대가를 되갚아 요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성취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서 다른 곳에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높은 자와 한 식탁에 앉게 되거든 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라.

너도 같은 식탁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탁의 주인이 자신이 음식이 되어 주는 잔치는 참으로 성대한 잔치입니다.

자기의 살로 손님들을 먹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그분은 초대하는 분이 되시고 또 음식과 음료가 되십니다.

순교자들은 자기들이 받은 음식과 음료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 그만큼 갚아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먼저 값을 지불하시어 순교자들이 당신께 갚아 드려야 할 것을

미리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갚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나는 구원의 잔은 받들겠노라."

이것은 무슨 잔입니까? 이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그 맛이 쓰지만 구원을 가져다주는 잔입니다.

의사가 먼저 그것을 마시지 않았으면 병자는 두려워 감히 손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수난이 바로 이 잔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의 말씀으로 이 잔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이 잔에 대해 순교자들이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고 말했습니다.

 

 

 

순교자여, 당신은 수난에서 실패할까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하신 분이

순교자들 안에서 승리하지 않으셨다면 순교자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늘 나라의 임금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입을 지탱하고 계셨고,

그들을 통해 지상의 마귀를 정복하시어 하늘에서 그들에게 월계관을 주셨습니다.

이 잔을 마신 이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고통을 다 마치고 영예를 얻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축일:8월28일

*나환자들의 목자, 몰로카이의 복자 다미안 사제 축일:4월15일

 

 

 

 

 

축일 : 9월 26일
성녀 데레사 쿠데륵
St. Teresa Couderc
Santa Teresa (Maria Vittoria) Couderc Fondatrice

ST. MARIE VICTOIRE THERESE COUDERC
(Mas de Sablières, 1° febbraio 1805 - Fourvières (Francia), 26 settembre 1885)
Born: 1 February 1805 at Le Mas, France as Marie Victoire Couderc
Died: 26 September 1885 of natural causes
Canonized:1970 by Pope Paul VI
Sisters of the Cenacle. Religious of the Cenacle

 

 

 

프랑스 사브리에르의 마슬에서 태어난 그녀는 마리 빅토리아로 영세하고,
J.떼름 신부가 자기 본당에 세운 교사 봉사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다.
떼름 신부가 남동 프랑스의 비브레의 선교사로 파견될 때,
그는 데레사와 다른 두 자매로 하여금 라 루베쉭의 성 프란치스꼬 레지스 경당에서
부녀자를 위한 숙박소를 운영토록 하고, 성 레지스 수녀회의 원장으로 그녀를 임명하였다(1829년).
여기서 데레사는 평신도를 위한 피정도 실시하였는데,
1834년에 떼름 신부가 타계하자, 예수회가 이 경당을 맡았으며,
마더 데레사가 원장으로 있는 성 레지스 수녀회원 12명을 선발하여 피정 지도에만 전념토록 하였다.
이것이 세나클에서 피정을 전담하던 성모 수녀회의 모태였다.
1838년, 마더 데레사는 원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수녀회가 재정적인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녀는 리용에 새 수도원을 세웠고,
여생을 평수녀로 봉사하면서 지냈다.
데레사는 1970년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녀 데레사 쿠데륵의 모토는 “좋은 말을 할 수 없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였다.

데레사가 수녀원에서 살고 있었을 때 그에 대해 거짓으로 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데레사 쿠데륵은 그 사람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고
그 일로 인하여 무려 13년 동안이나 가장 힘든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그는 죽을 때쯤 되어서 수녀원의 설립자로 인정받았으며 인내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두뇌와 입이 바로 연결되어, 머리 속으로 들어간 것은
바로 입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혀를 다스리는 법은 가장 배우기 힘들지만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인지도 모른다.
혀야말로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말을 삼가고 조절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제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배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크디큰 배라도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조종됩니다.
그래서 키잡이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배를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인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허풍을 떱니다.
아주 작은 불씨가 굉장히 큰 숲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야고 3,4-5)


혀를 무기처럼 사용했던 적은 없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말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축일:9월26일(9월27일)
성 엘제아리오와 복녀 델피아 부부,OFS
St. Elzear of Sabran and Bl. Delphina, husband and wife, III Order (For the III Order)

Sant'' Elzeario Conte di Ariano
27 settembre 
Martirologio Romano: A Parigi in Francia, sant’Elzeáro di Sabran
St. Elzear
Born : 1285 at Ansouis, Provence, France
Died : 27 September 1323 in Paris, France of natural causes
Canonized : 1369 by Pope Urban V

Beata Delfina di Signe Vedova
26 novembre 
Puimichel, Francia, c. 1285 - Apt, Francia, 1360
Blessed Delphine
Born : 1283 at Chateau-Puy-Michel in Languedoc, France
Died :  26 November 1360; buried next to Elzear at Apt



  성 엘제아리오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복녀 델피나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3회에 속하여 회원들의 영광을 더했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과감하게 가난한 이와 나누었고
기도와 선행에 전념하는 생활을 하였다.
성 엘제아리오는 1323년 9월27일에, 복녀 델피나는 1358년 11월26일에 세상을 떠났다.
 
  복된 엘제아리오와 델피나 부부를 통하여 혼인생활에서 뛰어난 성덕의 모범을
저희에게  주신 하느님, 간절히 비오니 지상에서 그들의 경건한 삶을 공경하는 저희가
천상에서 그들과 함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발자취를 따라서-재속 프란치스코회 지침서에서) 



   사브랑(Sabran)의 성 엘제아리우스(Elzearius, 또는 엘제아리오)는 프로방스(Provence) 지방 앙주이(Ansouis)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로비앙(Robians)의 부친 성에서 태어났고, 모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의 원장인 사브랑의 빌리암(William)으로부터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수도원장은 그의 아저씨였는데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영적 지도자의 영향을 받아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고, 1299년에 소유권 및 정치적인 입지를 고려해서 같은 프로방스의 귀족 가문의 딸인 델피나(Delphina, 12월 9일)와 결혼하였다. 알프스맥 저지대에 위치한 퓌미셸(Puimichel) 성에서 태어난 델피나는 당시 15세였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앙주이에서 살다가, 곧 퓌미셸 성으로 옮겨 와 살았다. 그들은 서로에 대하여 지극한 신뢰와 사랑을 지녔으며, 델피나는 남편을 따라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이 되었다. 또한 신심이 두터웠던 그들은 서로 합의하에 동정을 지키기로 서약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 거룩한 부부는 관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선행과 애덕 실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며 삶으로써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성 엘제아리우스는 매일같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그의 나이 23세 때에 부친의 명예와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열렬한 신심과 지혜로써 세속적인 재물을 다스렸다. 또한 그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일을 돌보기도 하였는데, 왕의 부탁으로 파리(Paris)에 대사로 갔다가 중병을 얻어 1323년 9월 27일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전에 그는 즉시 총고백을 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매일 묵상함으로써 온갖 고통을 이겨냈다. 노자성체를 영하면서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나의 희망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어느 작은 형제회 회원의 팔에 안겨 영광된 삶을 마쳤다.



   1309년경에 그는 자신의 조카인 그리모아드의 빌리암의 대부를 섰는데, 빌리암은 나중에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 교황이 되었고, 1369년 4월 15일 자신의 대부인 엘제아리우스를 시성하였다. 한편 델피나는 남편과 사별한 뒤 37년을 더 살았는데, 그녀는 그 동안에 나폴리(Napoli)의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의 수녀가 된 나폴리 여왕 산치아(Sanchia)와 함께 죽을 때까지 수녀원에서 살았다. 그녀와 여왕은 절친한 사이였다. 델피나는 대부분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많은 자선을 베푸는 등 은수자처럼 생활하다가 1360년에 사망하였다. 델피나는 1363년부터 시성 절차가 진행되었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1791년 델피나의 유해는 앱트(Apt)에 있는 작은 형제회 성당에 남편의 유해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엘제아리오와 델피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77-6078쪽.  (가톨릭홈에서)

 

 

San Francesco abbraccia Gesu crocefisso 

프란치스코성인께서
신자들에게 보내신 편지 1

1.회개하는 이들
1)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마태 22,39) 사랑하고,
2) 악습 및 죄악과 더불어 자신들의 육신을 미워하며,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4)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 :
5) 오, 그런 일을 실행하며 항구하는 남녀 모든 이들을 얼마나 복되고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지! 
6)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내리고(이사 11,2), 주님이 그들을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이며(요한 14,23),
7) 그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기 때문입니다.(참조: 마태 12,50).
8) 믿는 영혼이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할 때 우리는 그분의 정배들입니다. 
9)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마태 12, 50) 실천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 형제들이 됩니다. 
10)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11)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아버지를 하늘에서 모시는 것은, 오, 얼마나 영광된 일인지! 
12) 위로되시고 아름다우시고 감탄할 만하신 그러한 정배를 모시는 것이 오,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13) (아버지의 마음에)드시고 겸손하시고 평화로우시고 달콤하시고 사랑할 만하시고
또한 무엇보다도 바랄 만한 그러한 형제와 그러한 아들을 모시는 것이 오, 얼마나 거룩하고 좋은 일인지! 
이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비치셨고(참조: 요한 10,15)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14)거룩하신 아버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이었지만 나에게 맡겨 주신(요한 17,6)
이 사람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십시오.(요한 17,11). 
15) 그리고 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참으로 믿었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16)나는 세상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요한 17,8-9). 
17) 그들을 축복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요한 17,17).
그들을 위하여 나도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요한 17,19). 
18) 나는 이 사람들만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도 간구합니다.(요한 17,20).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요한 17,11)  이들도 거룩해져 하나가 되게 하소서(참조 : 요한 17,23) 
19) 그리고 아버지, 그들도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시고(요한 17,24),
당신의 나라에서(마태 20,21)나의 사랑을 그들이 볼 수 있게 하소서(요한 17,24).아멘.

  

성프란치스코.나환자와 함께

2. 회개하지 않는 이들
1) 그런데 회개 중에 있지 않고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3) 악습과 죄악을 일삼고 욕정과 자기 육신의 나쁜 욕망을 좇아 다니며, 
4) 하느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고, 
5) 육적인 욕망을 가지고 세속의 걱정과 살아갈 근심에 싸여 세상을 육적으로 섬기는 남녀 모든 사람들, 
6) 악마의 짓을 그대로 하고 악마의 자식들이 된 이들은 악마에게 붙들려 눈이 멀었습니다.
7) 참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8) 그들은 아버지의 참된 지혜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기에 영적인 지혜를 가지지 못합니다. 
9) 그들에 관하여 이런 말이 있습니다 : "한다한 그 재주도 다하였다"(시편 106,27). 그리고 : "당신의 영을 어기는 자는 저주를 받나이다"(시편 118,21). 
10)그런 이들은 악을 보고 알아채며 알면서도 행하여, 고의로 자기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11) 눈을 뜨십시오, 소경들이여, 그대들은 우리 원수들인 육신과 세속과 마귀에 속았습니다. 죄를 짓는 일은 육신에 달콤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육신에 씁니다. 
12) 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모든 악습과 죄악들은 "사람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기"(참조 :마르 7,21)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그대들은 이승에서도 내세에서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14) 그리고 그대들은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오랫동안 소유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은 속았습니다.
그대들이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모르고 있는 그 날과 시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쇠약해지고 죽음이 다가오고 결국 육신은 쓰디쓴 죽음을 당합니다.
15)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이 죽든 보속을 할 수 있는데도 보속을 하지 않고 회개와 보속 없이 대죄 중에 죽으면, 당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격렬한 고통과 시련 중에 마귀는 그의 몸에서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갑니다. 
16) 그리고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재능과 능력과 "지식과 지혜"를 빼앗깁니다. 
17) 그리고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유산을 넘겨주었고 이들은 그것을 받아 가지고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서 그들은 나중에 말했습니다 : 그는 우리에게 더 많이 줄 수 있었고 더 많이 남길 수 있었던 재산을 벌지 못했으니, 그의 영혼은 저주나 받아라. 
18) 벌레들이 시체를 먹어 버립니다. 이리하여 그는 짧은 이 세상에서 육신과 영혼을 잃고 끝없이 고통받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19) 이 편지를 받으시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참조 : 1요한 4,16) 부탁합니다 :
위에서 언급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말씀들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잘 받아들이십시오.
20) 그리고 글 모르는 사람들은 읽어달라고 자주 부탁하십시오.
21) 그리고 이 말씀들이 "영과 생명이니"(요한 6,63) 거룩한 행동으로 끝날까지 간직하십시오.
22) 그리고 이것을 행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참조 :로마 14,10) "심판 날에 헴 바쳐야 할 것입니다"(참조 :마태 12,36).

 

 

  Il Crocefisso di San Damiano
 

재속 프란치스코회란?
Ordo Franciscanus Saecularis 

"Ordo Franciscanus Saecularis" 라는 명칭은 이전까지 ’프란치스코 3회’라고 불리우던 것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78年 새 회칙을 인가하시면서 붙여준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천년의 긴 역사를 살아오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수많은 영적 가족들을 탄생시켰고,
그 중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창설자로 모신 1, 2, 3회의 영적가족이 있으니
그 숫자가 오늘까지 8백년 동안 수천만에 이르렀고 현재의 가족수도 백만이 훨씬 넘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가족들
1회는 프란치스코 남자 수도회를 말하고,
2회는 글라라회라고 불리우는 여자수도회(관상수녀회)이며,
3회에는 수도생활을 하는 정규3회,수도자인 수도 3회와 재속 신분으로 구성된 재속프란치스코회를 말하며,
(전국 51개의 형제회와 6,5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 프란치스코 영적 가족의 공통된 특징은 말할것도 없이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이다. 

세 가족의 친교와 고유 역할
이 세가족은 활기에 찬 친교를 이루면서도 각기 다양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실천한 빛나는 영성들을 스스로 배우고 익혀,
교회가 더욱 주님의 거룩하심으로 충만되도록 돕는다.

"선교활동"을 펴서 이 세상을 하루 빨리 하느님 나라의 질서에로 돌아오는데에 그 공동목표를 두고
가톨릭 교회 안에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계층의 형제회 즉.
지역, 지구, 전국, 국제형제회들을 묶은 하나의 조직체이다.
"입회자격은, 50세 미만의 가톨릭 신자이면 되고, 영세한지 3년이상. 견진성사를 받은 자라야 합니다.

교황이 인가한 세계적 공동체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성 프란치스코 가족 중의 하나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가지고
온세계 모든 평신도와 재속 사제들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교황이 인가한 회칙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계층의 형제회,
즉 지역, 지구, 국가형제회들을 묶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기원과 발전
재속 프란치스코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로마로 사도적 여행을 한 1212년경,
기혼 남녀 평신도들이 프란치스코와 그 동료들의 복음적 생활에 매력을 느껴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르려고 헌신하였던데서 비롯하였다.
당시에 귀족이나 천민이나 성직자나 평신도 등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 이끌려
프란치스코에게 오기 시작하여 성인은 제3회를 생각했고,
그들에게 생활규범과 모든계층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였다.
복자 루케치오 와 보나돈나 부부가 첫회원으로 알려져있다.

3회 배출 성인
제3회가 배출한 성인은 성 루도비꼬, 성 토마스모어, 성 요한 비안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등 60여명이 되고,
그레고리오 9세로부터 바오로 6세까지 20여명의 교황과 비테르보의 성녀 로사,
시성 단테, 예술가 미켈란젤로, 라파엘, 탐험가 콜럼버스,
레지오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 빈첸시오와 바울로회 창설자 프레데릭 오자남 등
각계 각층에서 3회원들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를 빛냈다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복자 루케치오와 복녀 보나돈나 부부(재속프란치스코회 첫회원) 축일:4월28일

*성왕 루도비코 9세(3회 주보성인)축일:8월25일
*성 토마스 모어 순교자(정치인들의 수호성인:축일:6월22일
*성 요한 비안네 사제(본당사제의수호성인)축일:8월4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3회 주보성녀)축일;11월17일
*비테르보의 성녀 로사 동정 축일:9월4일
*복자 프레데릭 오자남(빈첸시오와 바울로회 창설자)축일:9월8일

*레지오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Frank Duff):1921년9월7일 레지오 마리애를 창설

 

 San Francesco a Subiaco

한국의 재속 프란치스코회 역사

일본의 조선인 재속 3회원
한국의 첫 재속 프란치스칸은 1922년 미국 유학 중
재속 3회에 입회하여 서약한 장 면(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400여 년 전에 이미 조선인 재속 3회원이 있었다.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이들 중 다수는 노예 생활 중에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그들의 쓰라린 생활을 극복해 나갔다.
그 당시 일본에는 프란치스꼬 회원들이 전교를 하고 있었는데,
많은 조선인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프란치스꼬 재속 3회에 입회했던 것이다.

1597년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박해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26명이 나가사끼에서 순교의 화관을 쓰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프란치스칸으로 성 베드로 밥티스타를 비롯하여 17명의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 있었으며,
이들 중에 3명이 조선인이었다.
이들은 1627년에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862년 6월 8일에 비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또한, 1867년 7월 2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복된 순교자 205위 중 두 명도
한국인 프란치스꼬 재속 3회원이었다.
한 명은 파스칼 보스이고, 다른 한 명은 가이오리 에몬인데 모두 같은 날 순교했다.
따라서 한국의 3회의 역사에 있어 그 첫 자리는 일본에서 3회원이 된 순교자들이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

 

[일본의 순교자]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축일:2월 6일
일본에서 태어난 바오로 미키(1564,1565-1507년) 성인은 예수회에 들어간 다음,
복음을 널리 퍼뜨리는 데 큰일을 하였다.
박해 때 다른 동료 25명과 붙잡혔는데,
그 25명은 베드로 밥티스타와 5명의 프란치스코 제1회 회원들과 17명의 제 3회 회원을,
그리고 미키 신부와 일하던 2명의 교리교사였다.
그들은 모진 고문을 받고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다.

성 레오 가라수마루
ST. LEO KARASUMARU
in Owari, Korea -
crucified on 5 February 1597 at Tateyama (Hill of Wheat), Nagasaki, Japan
First Korean Franciscan tertiary 

한국 태생인 그는 원래 이방 종교의 사제가 되었으나,
1589년에 일본에서 예수회원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첫번째 재속 프란치스꼬 회원이 되었고, 또 전교 회장이 되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일본 내의 크리스챤 박해 동안,
그와 25명의 다른 교우들은 1597년 2월 5일에 나가사끼 교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와 함께 그의 동생 바오로 이바라끼 및 그들의 20세 되는 조카 루도비꼬 이바라끼가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1862년의 일본 순교자로 간주되어 시성되었다.

*동료순교자
*성 베드로 밥티스타 사제 순교자(1회)축일:2월6일
*성 바오로 스즈끼 순교자(3회)
*성 레오 가라수마루 순교자(3회):한국인으로 첫번째 재속 프란치스코회원
*성 바오로 이바라끼 순교자(3회):성 레오 가라수마루의 동생
*성 루도비꼬 이바라끼(3회):성 레오 가라수마루의 조카
*복자 파스칼 보스(3회):한국인.
*복자 가이오리 에몬(3회):한국인.

 

 

 

 

 

[이콘]양면 목십자가(兩面木十字架)  팔레히(Palech)양식. 19세기. 高 : 113.5cm

 

삼횡목(三橫木)으로 기본형을 이루는 러시아식 십자가 전면(前面)의

윗부분에는 구름속에 군림하고 있는  신(神,사바오스Sabaoth)과

그 아래에 위치한 성령(聖靈)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보인다.

 

맨 첫 횡목에는 수건을 손에 들고 비천(飛天)하는 두 명의 천사가 그려져 있고,

좌우 양 모서리에는 해와 달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횡목의 양끝에는 왼편에 성모마리아와 오른편에 제자 요한(Johannes)를 관찰할 수 있다.

 

핏기없는 그리스도의 몸 양 옆에는 창과 초(醋)를 바른 막대기가 보이고,

또한 예루살렘 시(市)의 일면이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아래로는 아담의 해골이 묻힌 골고다의 암굴(巖窟)이 열려있다.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를 아담의 무덤 위에 세웠다고 전한다.

 

십자가의 다른 후면(後面)의 첫 횡목에는 "최후의 만찬"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성창배 (聖蒼杯)를 볼 수 있다.

둘째 횡목의 왼쪽에는 십자가를 지고가는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유다의 입맞춤이라고도 하는 유다의 배반을 그렸고 중심부에는 예수의 부활이 묘사되어 있고,

이 세 장면들의 사이에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십자가의 수직면에는 기등 위에 앉아있는 닭(사도 베드로의 모욕을 상징), 창, 막대기, 사다리가 보인다

 

그 아래에는 영원히 잠든 성모마리아를 표현하였다.

희귀하고 색의 처리가 잘 조화된 보존상태가 특히 좋은 작품이다.

-유럽 聖畵(ICON)集 에서-

 

 

 

 

 

축일 : 9월 26일

안티오키아의 성 치프리아노와 성녀 유스티나 순교자

St. Cyprian,St.Justina of Antioch

니코메디아.3세기경.

 

역사적인 확실한 근거는 희박하나, 치쁘리아노는 안티오키아 사람으로서, 마술과 악마 종교의 신봉자였다.

그는 이런 일 때문에 그리스, 에집트, 마케도니아,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외교인 청년인 아글레데스란 사람이 안티오키아의 신자이던 미모의 유스티나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치쁘리아노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자,

치쁘리아노는 자신의 온갖 예식을 거행하였으나,

유스띠나의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무기를 다 동원하여 유스띠나에게 덤비는 악마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 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그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지난 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 치쁘리아노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권하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그는 즉시 에우세비오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였다.

그는 온갖 마술 서적을 불태웠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하였으며,

마침내 아글레데스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다가,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디오클레씨아노의 박해 때에 체포되어 페니치아의 총독에 의해

티르에서, 유스띠나와 더불어 고문을 받았다.

그들의 신앙과 영향력이 매우 컸으므로, 그들은 황제에게 끌려갔다가,

니꼬메디아에서 모두 참수되었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축일:9월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