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7주간 목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4. 5. 23. 05:59
<연중 제7주간 목요일 강론>(2024. 5. 23. 목)(마르 9,41-50)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 9,41-50).” 1) 여기서 ‘손, 발, 눈’은,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을 상징합니다. 그 어떤 것은, 일이나 물건이나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무엇일 수도 있고, 그 간절한 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도 있고, 부하 직원이나 제자를 ‘나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라고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상황이라면, 또 신앙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의 말을(권고나 충고를) 과감하고 단호하게 물리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 사이에 있었던 일이 좋은 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것을 말리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단히 엄하게 그를 꾸짖으셨고, 그의 말을 물리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방금 전에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주셨습니다(마태 16,18-19). 그만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였고, 중요한 제자였지만, 그가 사탄과 같은 유혹을 하자, 곧바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 일은, 글자 그대로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려면, 또 베드로 사도를 사탄의 힘에서 지키려면,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 말씀 때문에 베드로 사도가 큰 상처를 입고 예수님을 떠나려고 했다면?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하느라고 아버지께서 맡기신 임무수행을 실패하는 것보다, 제자 없이 임무를 성공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은 “내게서 떠나라.”가 아니라 “내 뒤로 가라.”, 즉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은, 베드로 사도를 잘라 내거나 쫓아내신 말씀이 아니라 그를 바로잡으신 말씀입니다.> 2)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나 자녀가, 친구나 동료가 나를 죄짓게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을 선택하면 죄를 짓고, 죄를 피하려면 사랑을 잃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곧 ‘선’이며, 언제나 항상 ‘선’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악한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니니까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3) 내가 지금 간절하게 바라는 그 일이 죄로 연결되는 일이라면 그 바람을 포기해야 하고, 그 일도 포기해야 합니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포기해야 합니다. 원칙은 그렇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 ‘포기’ 라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누구든지 ‘간절함’이 너무 크면, 그 간절함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다루는 소재이지만, 현실 상황에서도 잘못된 간절함 때문에 모두가 불행해지고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해야 하는 일은 ‘기도’뿐입니다.> 4) 우리는 ‘유혹’이 밖에서 나에게 오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내가 남을’ 유혹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또는 나도 모르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짓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5) ‘남을 죄짓게 하는 죄’의 반대쪽에 ‘물 한 잔의 선행’이(41절) 있습니다. 아주 작은 선행이라도 큰 죄를 막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 힘은 가장 먼저 ‘나 자신’을 구원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한 몸입니다. 모두가 함께 죄를 막아 주고, 모두가 함께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소금이 되어 주는 일입니다. <‘서로’는 사실상 ‘내가 먼저’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