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22주일 / 이영근 신부님 ~
연중 제22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그 무덥던 찜통더위도 물러가고, 그 세찬 바람과 매섭게 퍼붓던 비도 그치고, 9월의 드높은 하늘의 가을입니다.
연중 2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율법의 올바른 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신명기>의 말씀으로,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율법을 주면서 보여주신 사랑과 지혜를 생각하라는 모세의 따뜻한 권고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신명 4,5-6)
모세는 이스라엘은 주님의 법을 지켜 다른 민족에게 하느님 사랑과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법을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과 축복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의 실천이 참된 실천이 되기 위한 식별기준을 밝혀줍니다.
<첫째 기준>은 그것이 “위에서, 곧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이를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야고 1,17)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인간애를 포함하면서도 초월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위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만, 민주주의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둘째 기준>은 그것이 말씀의 원리를 따르고 있는지, 곧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를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야고 1,21)
왜냐하면, 바로 “그 말씀에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야고 1,21). 그러니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라고 말하며,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율법과 말씀의 올바른 실행’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 있음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정결법 논쟁을 통해 말해줍니다.
그들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나이 율법을 십계명의 성문율법 외에도 구두율법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613개로 확대하여 지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러한 ‘조상들의 전통’을 겉으로는 지키면서 자신들을 거룩하게 여기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 곧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을 “저주받은 사람들”(요한 7, 49)라고까지 하면서 족쇄를 씌워 짐 지우고, 반면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척하면서 다른 이들이 그분을 따르는 것마저 막았습니다(마태 23, 1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
그러고 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이 나온다.”(마르 7, 14-22)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의 올바른 실천’을 가르쳐주십니다. 사실, 참된 실천은 법의 원칙에 대한 외면적 준수가 아니라, 법의 근본정신에 맞게 사는 내면적 삶과 추종입니다. 곧 마음과 행실의 상관관계를 말해줍니다.
이를 흔히 우리는 ‘수행’이란 말로 사용합니다. 행위를 닦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행위를 닦는 일은 그 행위를 유발시키는 뿌리인 마음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행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생각입니다. 바로 그 나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히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 ‘겉이 아니라 속을 사랑으로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그렇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과업으로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실천이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실천하더라도 ‘참된 실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곧 아무 것이나 실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각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심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전통’을 따라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따라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진정 중요한 것은 실천하더라도 ‘빛 안에서 실천’하는 것이요, 사랑하더라도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마르 7,8)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지키기에 앞서,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