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1주간 목요일 / 정인준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4. 11. 7. 06:21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3,3-8ㄱ
형제 여러분,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양 한 마리를 잃으면 


사랑은 고통이 따른다고 하고 사랑은 인내가 필요하다가 말하는 말을 듣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에게 이 말이 실제적으로 전개될 때, 나 자신은 얼마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던 동창생이 우리의 자랑이나 되듯이 명문대까지 나와서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가씨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그 아가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걷은 것이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특히 그 동창생의 부모는 반대하는 모습이 심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후에도
그 아가씨와 변함없이 교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세상에 많은 아가씨들 중에 하필이면 그 여자냐고 그 친구를 욱박 지르고
그 친구는 그 여자 친구 외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 친구는 부모를 설득하고 기다린 끝에 그 아가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처음에는 그렇겠지만 점점 시부모님과 아주 흡족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그 집에서는 승낙을 받아냈고 결혼 후에는 그 집에 ‘복덩어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마음씨 좋기로 한 중년의 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의 직장에서 한 동료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그 직장 동료와 사무실에서 지내는 지겹고
힘든 시간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제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그의 고통과 어려움이 전달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동창이든 또 한 형제이든 다 한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 져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바로 한 개인 때문에 겪는 일입니다.

1950년 Platters 그룹의 Tony Williams vocals 팀이 불러서
음악의 큰 흐름을 만들었던 'Only you And you alone'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Only you can make this world seem right
Only you can make the darkness bright

Only you,and you alone can thrill me like you do
For, it's true, you are my destiny
When you hold my hand
I understand the magic that you do
You're my dream come true

이 노래의 끝 부분은 이렇지요.
my one and only you, only you

당신만이 세상을 올바로 보게 하고
오직 당신만이 어둠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다름 아닌 오직 바로 당신만이
당신만이 나를 모험하게 할수 있지요.
당신만이 나를 바꿀 수 있어요
그건 사실입니다, 당신은 나의 운명인걸요.
당신이 내손을 잡을 때
당신이 기적을 이루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내 꿈을 이루게 하지요.
오직 당신 뿐, 오직 당신뿐 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게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보고 투덜거립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루카 15,2)

예수님께서 이어서 양 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있는 목동이 한 마리의 양을 잃어 버린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그러다가 그 양을 찾게 되면
어깨에 그 양을 메고 와서 찾은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의인 99명 보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그 기쁨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겠어요?

루카 복음사가는 길 잃고 헤매는 한 마리의 양을 잊지 않고 헤매는 목동을 들어
설명하십니다.

여러 마리의 한 마리가 아니라 그 이름을 알고 있고 어디에서 헤메이는 고통을
알고 있는 목동의 사랑입니다.

자본주의에 살다보면 1달라가 우습고 1페니는 더욱 가볍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하나가 소중합니다.

여러 명의 아담이 아니고 여러명의 하와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나가 참으로
소중합니다. 당신의 창조물이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랑으로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남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장남, 한 사람의 차남, 한 사람의 딸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하나는 여러 명의 하나가 아니라 바로 나와 눈을 마주하며 나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듯이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찾아 나섭니다.
바로 주님께서는 나를 염려하며 사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서 나는 참으로 소중한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세상 끝날 때까지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유일한 사람, 바로 오직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