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 이영근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4. 12. 26. 06:34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어제와 오늘, 우리는 이 개의 ‘두 탄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는 하느님의 지상탄생일이었고, 오늘은 인간의 천상탄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지상탄생과 스테파노의 천상탄생, 이 ‘두 탄생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탄생이 ‘자기 비움’이라는 일종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곧 구세주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으며, 스테파노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있는 하느님의 지상탄생 없이는 뒤에 있는 천상탄생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스테파노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살았고, 예수님이 죽으신 것처럼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사랑의 순교’로 죽으셨듯이, 스테파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순교’로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사도 6,59)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26)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이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서도 불타는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랑에 “하늘이 열리고”(사도 7,56), 하늘은 그를 받아들여 사랑의 순교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내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오히려 자신 안에 품은 하느님의 사랑을 퍼 올리면, 우리 안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이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미움이나 배척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움과 배척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미움과 박해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과 ‘인내’에는 고통을 변화시켜 하느님과의 만남이 되게 하는 묘한 이법이 있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