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2주간 월요일 / 정인준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1. 20. 05:32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구약의 시대가 지나고 신약의 시대의 시작을 알리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서간 저자는 구약의 대사제와 예수 그리스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사제는 사람들 손에 의해서 뽑힌 사람으로 그는 사람을 위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연약하고 자신의 죄를 졌기에 자신을 위해서도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편에서 표현한 것처럼 ‘하느님에게서 나신 분’으로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사제이십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제와 다른 것은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고 멜키체댁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례자 요한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하는데 왜 주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합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대해 혼인잔치의 기쁨 중에야 어떻게 단식할 수 없다고 역설적 대답을 하십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신랑을 빼앗길 날이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서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 죽음은 스스로 원하신 것이지만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 서간의 저자도 설명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죽음으로 순종하여 대사제로 임명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약의 대사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대사제는 짐승을 제물로 삼아 바치지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가 제물이 되어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 구약의 전통과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헌 헝겊과 새 헝겊의 관계, 묵은 포도주와 헌 포도주 부대, 새 포도주와 새 포도주 부대의 관계임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에 의해서 구약의 시대가 마감하고 새로운 제자와 교회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해서 도전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따르고 고통도 따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도전을 시도하지 않으려고까지 합니다. 주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의지하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 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갈등이 있다하더라도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우리도 미래의 희망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안정의 자리를 떠나 역동의 삶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