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4주간 금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2. 7. 05:51
<연중 제4주간 금요일 강론>(2025. 2. 7. 금)(마르 6,14-29)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3,1-8 형제 여러분, 1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1) 세례자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선포하였고, ‘모든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이 꾸짖은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도 그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싫어한 사람이 헤로데와 헤로디아뿐이었을까?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요한의 회개 선포를 싫어했을 것입니다. 또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싶어 한 사람이 헤로데와 헤로디아뿐이었을까? 그 당시의 기득권층 사람들은 대부분 요한을 죽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행동으로 실행할 용기는 없었겠지만, 마음속으로는......>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였을 때, 당시의 여론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헤로데가 한 짓에 동조한 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헤로데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요한을 죽인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실상 살인죄의 공범이 된 것입니다.> 2) 헤로데와 헤로디아와 동조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7-21).”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자들’이고, ‘어둠으로 빛을 덮으려고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고 더 큰 죄를 지었는데, 그것은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구원받기를 거부한 죄이고, 스스로 심판과 멸망을 선택한 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받기도 전에 자기들이 스스로 심판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바로 그런 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모습이 곧 ‘이미 심판을 받은’ 모습입니다. <지옥은 하느님을 외면하고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하는 자들만 있는 곳입니다. 무슨 형벌을 얼마나 받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형벌입니다.> 3)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면서 사람들을 꾸짖은 것은, 심판이 아니라 사람들을 심판에서 구하기 위한 일입니다. <회개시켜서 ‘구원의 길’로 인도한 일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여서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그가 순교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듣지 않았고, 회개하기를 거부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듣지 않았고, 구원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이 순교한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필연’은 아니고, 인간 세상의 현실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요한은 자신이 맡은 사명을 ‘죽음’으로 완수한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임무 수행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부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구원 사업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인데,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의 회개와 구원이 아직도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