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7주간 화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연중 제 7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종과 섬김의 영성, 환대의 영성”
전쟁터같은 세상입니다. 평화를 추구하며 갈망하지만 참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입니다. 인류사는 전쟁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보면 정말 영원히 없어져야 할 전쟁입니다. 읽고 있는 두권의 책, <십자군 전쟁에서 배우는 평화를 위한 지혜,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과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 눈에 띈 ‘전쟁’이란 말마디에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미 예전부터 수도생활은 영적전쟁이요 수도자는 주님의 전사란 말이 정의처럼 쓰였고 저 또한 무수히 사용했습니다. 믿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서 영적전쟁을 수행하는 주님의 전사라고 말입니다. 이와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이 종과 섬김의 영성, 환대의 영성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모든 이의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이런 이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사람이라하십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살아온 세월을 맹신하면 축적한 내공이 편견이 된다. 일가견을 이룬 사람은 아이의 마음을 찾아야 한다.”<다산>
“어른이란 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맹자>
일가를 이룬 대가의 품격은 아이다움입니다. 마냥 순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유연하고 자유로움으로, 또 사랑의 지혜로 표현되는 아이같은 대가의 품격입니다. 전쟁터같은 세상에서 이런 품격의 어른이라면 평화의 사도로 손색이 없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이런 어른은 그대로 예수님께 해당된다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어린이를 사랑하여 껴안으시는 예수님의 순수한 동심이 빛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결코 마냥 아이같은 순진한 것 같은 아닐 것이며 사랑의 지혜로 빛나는 순수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환대함이 예수님 당신을 환대하는 것이자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란 놀라운 진리가 계시됩니다.
여기서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순진함이 아니라 상처받기 쉽고 소리없는, 약하고 무력한 가난한 이들, 믿을 것이란 오직 하느님뿐! 하느님께 의탁하여 살아가는 가난한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아나뵘입니다. 이는 앞서의 말씀에 대한 답이 됩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바로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그의 형제자매들중 가장 작은 이들, 즉 약하고 가난하며, 상처받기 쉽고 소리없는 이들이요, 이들을 따뜻한 환대로 맞이하는 자들이 진정 가장 위대한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아나뵘의 영성’을, ‘종과 섬김의 영성’을 사는 진짜 신자들이요, 이의 영원한 모범이 바로 우리 한가운데에 계시는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바로 이런 결론에 이르는 발단이 된 것이 예수님의 2차 수난과 부활을 예고한 후 논쟁입니다. 철부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에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하였기 때문입니다. 동상이몽의 오합지졸의 제자공동체가 예수님께는 참 환멸스러웠을 것이며 내적 외로움과 고독도 참 컸을 것입니다.
뒤늦게 잘못됐음을 깨달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물음에 묵묵부답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깨우치려 예수님께서는 종과 섬김의 영성을, 어린이를 받아들임의 깊고 깊은 의미를 가르치십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예수님의 의중을 깨달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새로운 충격적 참신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종과 섬김의 영성’을 또 동심의 어린이성을 회복하여 어린이를 맞아들이듯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맞아들이는 ‘환대의 영성’을 살 수 있을런지요. 오늘 집회서가 답을 줍니다. 역시 섬김의 영성을, 환대의 영성을 선택하여 훈련하고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전쟁 같은 삶의 시련 중에도 주님을 경외하며 다음 집회서의 가르침을 실천 훈련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 생략하기 아까워 오늘 제1독서 집회서 전문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인용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금과옥조의 가르침입니다. 말그대로 영성훈련의 필수요목들입니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하여라.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주신다.”
값싼 은총도, 값싼 영성도, 값싼 제자직도, 값싼 평화도 없습니다. 이런 부단한 영성훈련과 함께 가는 종과 섬김의 영성, 환대의 영성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주님께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단히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을 훈련해야 합니다. 끝까지 주님을 버팀목 삼아 참고 견디며 버텨내야 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