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7주간 목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2. 27. 05:35
<연중 제7주간 목요일 강론>(2025. 2. 27. 목)(마르 9,41-50)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구원의 길’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받는 것’뿐입니다.』 1) ‘물 한 잔’에 관한 말씀에서, 요한복음에 있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가 연상됩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7-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요한 4,13-15)”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 즉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이신 분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구원받기를 원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 라는 약속입니다. <아무도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구원받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물 한 잔’에 초점을 맞추면,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선행과 사랑이라도 다 기억하시고 상을 주신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세례를 받을 기회가 없어서 신앙인이 되지 못했더라도, 구원받기를 원하고, 구원받으려고 노력한 사람들, 또 하느님 뜻에 합당하게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사람은, 하느님께서 어떻게든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2) 손(발, 눈)을 잘라 버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엄하게 꾸짖으신 일에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마르 8,31-33).”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오른 팔’ 같은 사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였지만, 그가 당신이 가시는 길을 막으려고 하자, 아주 단호하고 엄하게 그를 잘라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를 아끼다가 구원사업을 망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를 완전히 잘라낸 것은 아니고, 그가 떨어져 나가기 전에 바로잡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손, 발, 눈’은,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간에 ‘내가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는 그 물건이 내가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그 사람을, 또는 그 물건을 과감하게 잘라 버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한 애착심과 미련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 그 사람을, 또는 그 물건을 끊어내는 것은 지혜입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끊어내는 것은, ‘그의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죄 짓게 하는 마음을 잘라 버려라.” 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잘라내는 방법은 ‘기도’뿐입니다. 3)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온 삶으로 실천해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라는 말씀은,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연결됩니다(마태 5,13). 쓸모가 없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