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7주간 금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연중 제7주간 금요일 강론>(2025. 2. 28. 금)(마르 10,1-12)
복음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혼인법은 멍에가 아니라 은총을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1) 구약성경 토빗기를 보면, 토비야는 혼인 첫날밤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토빗 8,5-7).”
이 기도에는, 혼인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일이라는 믿음이 들어 있는데, 그 믿음은, 혼인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믿음입니다.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라는 말은,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나타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일’을 함께한다는 믿음으로 결혼합니다. <인간적인 욕망이나 욕심으로 결혼하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라는 말씀은, “혼인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 또는 “혼인은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인간들은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정해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그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다고, 또는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일’이라고 믿는다면, 하느님께서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보호를 잘 받는 방법입니다. 더 좋은 방법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을 잘하는 비결은 ‘기도’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또 가족이 ‘함께’ 바치는 기도는 그 가정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3)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혼장에 관한 모세의 규정은, 인간들이 하느님도 잘 모르고, 하느님의 뜻도 모르던 시절에 무지몽매한 인간들을 위해서 만든 과도기적 규정일 뿐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 규정은 하느님의 계명이 아니라 사람의 규정일 뿐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규정을 당신의 권한으로 폐지하셨습니다.>
4) 2절의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라는 말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라는 뜻인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혼인과 이혼에 대해서 질문한 것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이혼과 재혼을 꾸짖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마르 6,17-29). 그래서 바리사이들의 질문에는,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일은 정당한 일인가?”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단순하게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 라고 대답하셨다면, 바리사이들은 헤로데에게 가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를 비난했다고 고자질했을 것이고,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셨다면 산상설교의 가르침(마태 5,31-32)과는 다른 말을 했다고 사람들을 선동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세기의 내용을 언급하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 바오로 사도는 혼인에 관해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1코린 7,15). 혼인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회의 혼인법’은 신앙인들을 속박하기 위한 멍에가 아니라, 신앙인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의 혼인법에도 적용됩니다.
혼인법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혼인법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거룩함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그 고통을 잘 극복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송영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