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7주간 토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연중 제 7주간 토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칼 융: 뜻밖의 신비주의자
2025.03.01. 04:40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2월 28일 금요일 (호명환 번역) 아홉 번째 주간: 라인랜드(독일)의 신비주의자들
융은 의식(rituals)과 신화, 그리고 상징의 중요성을 믿은 사람입니다.
나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듯이 내 모든 생각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을 알았고, [하느님]이 억누를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만일 이 강렬한 힘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가장 극악무도한 죄라고 느꼈을 것이다.
- 칼 융(Carl Jung) 1955년 편지
리처드 신부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을 신성하신 분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신비주의자로 봅니다:
저의 영적 계보에서 주요 인물들 중 한 사람은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 1875-1961)입니다. 비록 그는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당시 제도 그리스도교에 대해 많은 것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극도로 물질주의화되고 점점더 세속적으로 되어가던 유럽의 영적 세계를 재발견해 줄 견고한 초석을 놓은 사람입니다. 융은 내적인 삶이 외적인 삶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의 생애 후기에 그는 "이제는 하느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단호하고 자랑스럽게 답했습니다. "나는 압니다. 나는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압니다." [1]
융은 보수든 진보든 많은 그리스도인을 놀라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예수님의 삶과 교회의 많은 교리를 완전하고 완벽한 지도(map)요 인간 변모를 위한 안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의식(rituals)과 신화, 그리고 상징의 중추적인 중요성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은 그의 이런 태도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비록 융은 성경 말씀들에 더 많은 의미와 더 많은 신뢰를 두었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그를 비-신자로 여겼습니다. 그가 주장한 그림자와 역설, 전형, 상징, 그리고 인간의 신성한 존재로의 변모에 대한 심리적인 특징이 그를 영혼의 참된 예언자요 모든 존재 내면 깊이 들어있는 성사적 특징을 가르쳐 준 선생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2]
융은, 만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바라신다면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처럼 느껴질 말씀들을 사용하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방법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로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인식하고 존중하고 때로는 우리의 생각이 하느님의 생각이라고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면의 신뢰심과 권위는 주류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외적인 권위와 거의 전적으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융은 성서와 사제들, 사목자들, 그리고 교황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런 것들이 자아에 있어 모두 외적인 것이고 종교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보게 해 주는 것들이라고 보았습니다. 융은 우리에게 그런 상징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안쪽을 뒤집어 보면 우리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이미 신비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가르치길 바랐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깊은 자아와 접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전체는 하느님의 고통이다." [3] 이것이 바로 신비주의자들이 깨달았던 것인데, 저는 융이 한 말 중에서 이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신비주의자는 부분들 안에서가 아니라 전체들 안에서 모든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 전체들은 삶의 모든 이야기들을 연결시켜 주고 커다란 패턴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들은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체들을 볼 때, 우리는 언제나 부분들이 있어야 할 장소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4]
우리 공동체 이야기
매일 묵상을 통해 신비주의자들과 신비주의에 대해 읽으면서 저는 저 자신의 신비 체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비적인 방식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제 삶의 후반기에 와서였습니다. 가장 큰 경이로움이 넘치는 순간들을 맞이한 것은 제가 바깥에서 홀로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새들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저도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사랑에 압도되어 폭풍우 가운데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Kathy M.
[1] Carl Jung, interview with John Freeman for BBC Television, March 1959. See “The ‘Face to Face’ Interview,” in C. G. Jung Speaking: Interviews and Encounters, ed. William McGuire, R. F. C. Hull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428.
[2]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Rhineland Mystics,” The Mendicant 5, no. 3 (2015): 1, 6.
[3] C. G. Jung, “A Psychological Approach to the Dogma of the Trinity,” in Psychology and Western Relig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75.
[4] Adapted from Richard Rohr, Rhine Talks, 2015. Unpublished.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ugustin Fernandez, Untitled (detail), 2020,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는 라인랜드 신비주의자들과 더불어 이 땅의 식물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시간과 공간을 통틀어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우리도 이 위대한 신비로 들어가는 관문에 발을 들여 놓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