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3. 6. 05:38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보편적 슬픔!

 

하느님의 숨

2025.03.05. 17:31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5일 수요일 (호명환 번역) 열 번째 주간: 존재들의 눈물

 

눈믈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의 깊이를 드러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대축일 전 40일간의 사순시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신부는 애도(哀悼: lamentation)가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임을 소상히 설명해 줍니다:

 

 

성경에는 오직 하나의 책만이 감정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애가(哀歌: book of Lamentation). 예레미야는 기원전 587년에 바빌로니아 제국의 예루살렘 침략으로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에서 유배의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슬픔, 즉 "인생의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일화나 명확한 예가 없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다른 예언서들에서는 특정한 통치자들과 왕국들, 그리고 역사의 순간들이 언급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것들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우리 인간의 보편적 슬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우리 모두를 보편적 연대로 초대합니다.

 

 

팔레스타인 시인 모삽 아부 토하(Mosab Abu Toha)는 슬픔이 가져다주는 황폐함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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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에서 깨어나 온 종일 전기가 들어오는 곳에 있고 싶다.

나는 총소리나 드론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새들의 노래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내 책상이 나에게 펜을 잡고 다시 글을 쓰라고 하면 좋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소설 하나라도 읽고 시 하나를 다시 만나고 연극을 읽고 싶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침묵의 담벼락들뿐이고

소리 없이

흐느끼는 사람들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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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언자들, 특히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분노하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신성한 슬픔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래서 여기서의 언어는 "죄"에 대한 화에서 고통과 상처에 대한 연민의 언어로 바뀌지만, 여전히 구원과 해방을 기다리는 언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너에게 건강을 되돌려 주고 너의 상처를 고쳐 주리라. 주님(야훼)의 말씀이다."(예레 30,17).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변함없이 울부짖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고, 울부짖는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 내면에서는 곧 동정과 자애가 흘러나옵니다. 최후에 있을 냉혹한 심판이 흐르는 눈물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라짐"의 한 예를 들자면, 우리 로마 가톨릭교회가 자살에 대한 공적인 입장을 바꾸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살에 대해 징벌이 강조되었다면 이제는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공감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중독이 악의가 있는 윤리적 결함이 아니라 "치유되어야 할 아픔"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예로 들고 싶다. 화는 이런 변화를 이룰 수 없지만, 눈물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변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성숙해지신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만큼 성숙해진 것일까요? 이전에는 감성적이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자비와 연민의 구절들이 이제는 참된 현실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 그 성경 구절들이 늘 거기에 있었는데도 우리는 그 구절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물이 있는 시냇가를 걷게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 길을 걷게 하리라."(예레 31,9). 눈물의 길을 통한 변모의 과정은 대개 숨겨져 있고 의식되지 않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특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눈물이 비록 단순한 감정의 반응으로 보일지 몰라도, 저는 이 눈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로운 행위가 깊숙히 들어있습니다. 눈물은 우리가 참으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는 우리 내면 아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의 깊이를 드러내 줍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제 에고의 분노로 가득 찰 때 제 내면에서 울 수 있는 공간을 찾습니다. 눈물이 나오게 되면 그 눈물이 저로 하여금 화와 노여움, 그리고 두려움을 거쳐 해방에 이르게 해 줍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을 내려놓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에게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배울 공동체의 공간을 마련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Claire H.

 

 

[1] Mosab Abu Toha, “Sobbing Without Sound,” in Things You May Find Hidden in My Ear: Poems from Gaza (City Lights Books, 2022), 25. Used with permission from City Lights Books.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Tears of Things: Prophetic Wisdom for an Age of Outrage (Convergent, 2025), 9698.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Noé Barnett, Untitled (detail), 2024, oil paint, Albuquerque. Click here to enlarge image. 노에 바넷(Noe Barnett)이 그린 위 그림의 이미지가 리처드 로어의 책 존재들의 눈물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엄청나게 다정다감하고 엄청난 배려심으로 눈물 한 방울을 붙들고 있는 저 손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