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3. 13. 06:14

사순 제1주간 목요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해방과 사랑!

 

하느님의 숨

2025.03.12. 16:41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3월 12일 수요일 (호명환 번역) 열한 번째 주간: 지극한 은총

 

성경은 끝없는 위협이 아니라 낙관적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리처드 신부는 포용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사야 예언자를 인용하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당신 자신을 처음으로 소개하시면서 직접적으로 인용한 히브리 예언자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8-19, 이사야서 6,1-2 인용)

 

+++++++++++++++++

 

 

예수님은 당신이 인용하시는 예언자처럼 당신의 자기-확신뿐 아니라 당신이 의도하셔서 당신 말씀을 들을 청중이 누구인지에 대해 드러내 주십니다. 그분이 전하시는 기쁜 소식의 메시지는 편안하고 안전한 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이 찾고 들을 내용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에 걸쳐 그대로 설명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부러 뭔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문구 전체를 인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십시오: "나는 마음속으로 복수의 날을 정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하느님을 한계가 없으신 분이 아니라 제한하고 위협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이런 하느님은 이 구절에서도 당신이 언급하셨고, 이사야가 60장 전체에 걸쳐 묘사한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이야기를 경고와 두려움으로 마무리짓지 않게 하십니다. 다행히 우리는 이사야도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문의를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겨레에게 나는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이사 65,1)

 

+++++++++++++++++

 

 

하느님은 너무 과분하게 내어주시고 관대하신 것 같아 보이고, 우리에게는 과분한 희망이 주어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나머지 마지막 예언을 위해 언급하는 복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사야는 마지막 구절에서 지옥(게헤나)의 불을 암시하는 내용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가르침에서 불의 은유는 영원한 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 불은 거의 모두가 내세에서의 고문의 불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정화를 위한 "정제사의 불"로 나타납니다.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은 우주적 해방과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고자들(eunuchs)과 이방인들로부터 시작해서(56,1-7), 반항하는 백성과 자기네 멋대로 좋지 않은 길을 걷는 자들(65,1-7)에 대한 언급,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구원의 선포(65장 나머지 전체), 그리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65,17; 또 66,22)이 펼쳐지는 온전한 우주관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들은 신약성경의 마지막(묵시 21,1)에 다시 등장합니다.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성경의 메시지 전체는 균형 잡히지 않고 사랑과는 절대 거리가 먼 끝없는 위협의 메시지가 아니라 낙관적인 희망과 비전의 메시지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제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의 산불 때 집을 잃은 후 100세가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간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 죽음과 관련하여 보험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겼었습니다. 특히 저도 이 산불로 제 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알게 된 짧은 기도문을 계속 되풀이하여 외웠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청했으며, 이 둘의 다른 점을 아는 지혜를 청했습니다. 이 지혜를 되풀이하면서 저는 이 혼란한 시기 동안 온전한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한 해 동안 가진 것 전부를 잃으셨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습니다.

 

—Mimi J.

 

Adapted from Richard Rohr, The Tears of Things: Prophetic Wisdom for an Age of Outrage (Convergent, 2025), 12312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Geentanjal Khanna, Untitled (detail), 2016,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노력으로나 공로가 아닌 거저 주어지는 자비는 우리 삶에서 그저 손을 벌리기만 하면 되는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 사실 우리는 물 한 방울처럼 별것 아닌 것 같고 때로는 계획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극히 혼란한 상황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