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2주일 / 정인준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3. 16. 07:51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5,5-12.17-18
그 무렵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5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3,17―4,1
17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21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8ㄴ-36
그때에 28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하얗게 변하신 주님”


아브람은 하느님만 말씀에 따라 생소한 광야로 나섰습니다.
그에게 펼쳐지는 것은 축복보다는 사막의 광활함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위험들이었지만 그는 하느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땅과 후손을 약속하시며 그 약속을 계약으로 보여주십니다.
삼 년 된 각각의 암송아, 암염소, 숫양 한 마리를 반을 쪼개고 와 산비둘기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준비하여 펼쳐 놓아 하느님께서 그것들의 사이를
지나가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목사회의 관습에 따라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당신께
온전히 순명하는 아브람에게 후손이 살 땅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창세 15, 18)


예수님께서는 오늘 평소와는 다르게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 데리고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런데 겟세마니에서도 잠을 자던 제자들은 그곳에서도 잠에 빠집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데 얼굴 모습도 달라지고 입고 계시던 의복도 하얗게 번쩍
거립니다. 그러는 사이에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갚은 잠에서 깨어난 그곳의 제자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두려움과 놀라움에 싸이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과 하나는 모세 또 하나는
엘리야가 머물게 하면 좋겠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24)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인적이 닿지 않는 산으로 올라가신 것은
특별한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렇다하더라도 한 세트처럼 다니던
안드레아 사도는 어디 갔을까요? 여러분 아셔요? 휴가를 갔다거나 아니면
식사 당번이었겠지요? 너무 싱거운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주님께서 제자와 군중과 함께 계셨는데, 오늘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잘못하다가는 주님의 참다운 모습이 와전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구약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정도로
그리고 하늘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는 광경은 장엄하기조차 합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그리고 하얗게 변한 모습은 당신의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고
모세와 엘리야와의 대화 내용은 장차 당신이 겪으실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한 중요한
주제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 길을 준비하고 계셨고 사랑하는 제자들의 신앙을 위해서도
특별한 장면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장차 수난과 죽음이 닥쳐오면 제자들은 흔들리고
뿔뿔히 헤여질 것을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실 때를 아시고 구약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구원의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도 여러차례 예언했던 메시아의 도래인데, 그것은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고통을 좋아할까요? 누가 군중 앞에서 펼쳐지는 수모를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고통의 잔을 마셔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신중하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난과 죽음은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하옇게 변하는 변모처럼, 부활의
기쁨이 또한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한 순간을 보여주셨는데도 사도 베드로는 말로 다할 수 없이 감격을 하였다면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되면 그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영광의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산위에서 주님께서 모습을 변하신 사건은 우리에게도 당신 부활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제자들처럼 갈팡질팡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명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항구한 신앙을 일상생활에서 증명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