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 정인준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4. 29. 06:57
 
4월 29일 화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제1독서
<한마음 한뜻>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4,32-37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ㄱ.8-15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9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자동차도 달리다 보면 가속이 붙습니다. 커브길에서 그 속도대로 못가고 천천히 가야하듯,
구약으로부터 내려온 그들의 삶이 하루 아침에 변화를 주기가 힘든 것은 당연하겠지요.

니코데모와 주님과의 대화는 헌부대와 새부대로 나누어 묵은 포도주를 담는 것과 새 포도주를
담는 비유의 말씀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데,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으면
개스가 나와 헌부대를 망가트린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낡은 부대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의 입장에서 보면 니코데모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차동차가 방향을 만나면 거기에 맞는 속도를 줄이듯 구약의 가치관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는 적지 않는 혼란이 일어 나는 것입니다.

당연히 니코데모의 입장을 이해하시며 주님께서는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4,7-8)

니코데모가 주님의 이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을 하자 주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10절)라고 말씀하시며 또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14-15절)

니코데모가 물론 이 말씀을 당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바탕을 둔 제자들까지도 이 말씀을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예언하신대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성려을 받은 후에야 참다운 뜻을 알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광야에서 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을 때 그 구리뱀을 쳐다보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라면 다 기억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신 자신의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음을 맞이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교우들은 기쁨과 재산을 나눕니다.
이 사실을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사도 4,32-33)

재물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유대인들 중에 인색한 사람들이 많은데 주님 부활은
그들을 새롭게 변화 시켜줍니다.

이 사실도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34-35)

진정한 주님의 부활은 사람에게 역동적이며 새 새명을 불어 넣어 줍니다.
사순절과 성주간을 맞아 우리는 끊임 없이 기도하며 부활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기쁜 부활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묵은 우리이 삶에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성녀 가타리나를 통하여도 활동합니다.

그녀는 한 연약한 여인이었지만 1309년부터 1377년까지 아비뇽(Avignon)에 머물렀던
교황좌가 1376년에 로마(Roma)로 돌아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가타리나 성녀는 그 후에도 정통 교황을 지지하다가 암살을 당할 뻔 했지만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을 맺는데 또한 큰 기여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한 여인을 통해서도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바티칸이 붙어 있는 성베드로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화해의 길’ 입구에 성녀 가타리나 상이
있는 것도 주님 부활의 놀라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 부활은 우리 각자의 삶에 새로움과 역동적인 활동을 하게 합니다.
묵은 어제가 아닌 부활의 새날을 맞읍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