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3주간 토요일 / 양승국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5. 10. 05:42
2025년 5월 10일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제1독서 <교회는 굳건히 세워지고,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9,31-42 그 무렵 31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32 베드로는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리따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가게 되었다. 33 거기에서 베드로는 애네아스라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중풍에 걸려 팔 년 전부터 침상에 누워 있었다. 34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애네아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고쳐 주십니다. 일어나 침상을 정돈하십시오.” 그러자 곧 애네아스가 일어났다. 35 리따와 사론의 모든 주민이 그를 보고 주님께 돌아섰다. 36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37 그 무렵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어 옥상 방에 눕혀 놓았다. 38 리따는 야포에서 가까운 곳이므로, 제자들은 베드로가 리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사람 둘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저희에게 건너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9 그래서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그를 옥상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자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에게 다가가 울면서, 도르카스가 자기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어 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었다. 40 베드로는 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시신 쪽으로 돌아서서, “타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눈을 떴다. 그리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41 베드로는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운 다음,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다시 살아난 도르카스를 보여 주었다. 42 이 일이 온 야포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60ㄴ-69 그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60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6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64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66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68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69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상식적이고 균형 잡힌 신앙이 필요합니다! 하루하루가 꽃피는 봄날 같고, 앞길이 탄탄대로 같았던 한 청년의 슬픈 스토리입니다. 재력 넘치는 조부모님, 책임감 있는 부모님 아래 펼쳐지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명문고 진학, 전 세계 백대 학교 안에 드는 대학교 유학, 세상 착하고 아름다운 신부감 등장과 결혼, 그리고 꿈에 그리던 직장 취직...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시피 결핍과 한계투성이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승승장구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리며, 잘 나가던 인생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바닥 체험을 하게 되고, 우울증과 공황 증세까지 찾아와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연쇄적인 고통의 풍랑 앞에 망연자실해 있는 한 그에게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왔습니다. 점심도 같이 먹고, 차도 같이 마시면서, 그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던 내면의 고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던 어느 날, 그는 어딘가를 같이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거기 가면 모든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거기 가면 여기저기 아픈 곳도 순식간에 치유받을 수 있다며, 거기 가면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며, 거기 가면 꿈에 그리던 재림 예수님을 직접 만나뵐 수 있다며...한번 찾아가 뵙지 않겠냐고 초대합니다. 그렇게 엉겁결에 따라갔다가, 철저하게도 설정된 야릇하고 묘한 분위기와 처음 대면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꽤나 이상한 분위기에 긴기민가하지만, 자꾸 다니다 보니 점차 빠져 들어가고, 마침내 그 이상한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차츰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사이비 광신도가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이비의 특징은 악령과도 같습니다. 사악한 동시에 계획적입니다. 갖은 계략과 미끼를 던져놓고 사람들을 집요하게 현혹시킵니다. 그들의 특징은 유사합니다. 사이비 지도자의 입지를 절대화, 신격화합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사이비 교주를 이용하는 동시에, 선량한 사람들을 악으로 이끄는 하이에나 같은 도우미 무리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바는 너무나 황당무계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거기 가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한 마디로 웃깁니다. 가르치는 바 역시 지극히 유치합니다. 자신들의 어이없는 주장에 억지로 성경을 끌어다 맞춥니다. 주장하는 교리는 지극히 비상식이고 비논리적이며, 반교회적, 반사회적입니다. 사이비 교주들은 스스로를 자칭 메시아, 자칭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칩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수용할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마치 그들의 행태는 과거 장바닥에서 카드 세 장 놓고 서민들 돈을 갈취하던 야바위꾼 무리들의 행태와 유사합니다. 카드를 쥐고 야바위판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야바위판으로 이끄는 호객꾼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같은 편이면서도 손님인척 가장하며 분위기를 몰고가는 바람잡이꾼들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이비들은 철저하게도 팀으로 일합니다. 멋모르고 따라갔다가는 그들의 치밀한 전략 앞에 영락없이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이비에 빠져든 부인, 아들딸을 구출해내기 위해 생계마저 포기하고 죽을 고생을 하고 계시는 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이비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큰 악이요 병폐, 적폐 대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떨칠 수 없습니다. 갖은 유사영성과 사이비 지도자들이 판을 치는 종교박람회장이자 사이비 지도자들의 천국인 우리나라입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 역시 주님 앞에 무릎꿇고 끊임없이 외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 68-6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양승국 신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