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부활 제 4주간 화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5. 13. 05:48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착한 목자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

 

 

 

“AI 시대 ‘인간다운 노동’ 보장해야...교황은 겸손한 종일뿐”

 

 

 

경향신문 어제 신문 2면의 큰 글자의 기사를 읽으면서, ‘아, 새로 뽑힌 레오 14세 교황도 성인이구나!’하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일정을 소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도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훌륭한 후계자구나!’ 하는 느낌도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명실공히 명품종교 가톨릭교회에 명품교황이 탄생한 것입니다. 특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있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앞에서 기도하는 레오14세 교황의 사진은 참 아름답고 거룩한 느낌에 길이 보존하고자 스크랩 해두었습니다.

 

 

 

무덤 관위에는 franciscus 란 라틴어 글자의 이름만 새겨져 있고 그 위에는 꽃 한송이 놓여져 있는 단순한 모습도 참 강렬했습니다. 오히려 부재로서 생생히 현존하신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셨을 때 “하느님의 집에 돌아가셨다”라는 교황청의 메시지도 생각났습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의 전하는 교황 선출 큰클라베 분위기 묘사도 소개합니다.

 

 

 

“미디어와 언론은 콘클라베를 정치와 투쟁의 장처럼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낄수 없었다. 콘클라베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친교적이며 아름다웠다. 외부에선 정치적이고, 야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건 없었다. 레오 14세 교황이 선출됐을 당시 시스티나 경당은 박수를 치고 야단이 났으니 그대로 잔치와 축제 분위기였다.”

 

 

 

이어 어제 신문 사설도 레오14세 교황에 대한 기대와 당부였고 마지막 부분만 인용합니다.

 

 

 

“현대의 교황은 14억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82억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평화의 사도’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이어받아 새 교황이 지구공동체 회복의 초석을 놓고 인류평화에 기여하길 전 세계인과 함께 기원한다.”

 

 

 

제가 프란치스코 전임 교황과 레오14세 교황은 물론 콘클라베에 참석했던 추기경들로부터 받는 느낌은 이분들의 착한목자 예수님과의 우정입니다. 참으로 착한목자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을 충실히 살았던 추기경들입니다. 몇 달 몇년에 이런 아름답고 거룩한 인격이나 인품의 형성이 아니라 평생 주님과 우정의 여정에 충실한 결과, 이런 명품인생, 명품신자의 인격과 인품의 추기경들입니다. 주님과 우정의 여정은 그대로 우리 신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이 바르나바 사도의 인품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로마, 알렉산드레아에 이어 세 번째 큰 도시가 안티오키아입니다. 안티오키아교회에 결정적 영향을 준 바르나바 사도가 그대로 ‘주님의 꽃’이자 ‘주님의 향기’같다면, 주님께 인도된 수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꽃향기에 날아드는 무수한 벌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복음 선포 여정과 함께 필히 함께 가는 주님과 우정의 여정입니다. 이래서 기도와 말씀공부가 우선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오늘날 교육이 놓치고 있는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지혜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보다 더 큰 가르침은 ‘멀리 바다를 꿈꾸게 하는 것’이다.”<다산>

 

“백성이 많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들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부유하게 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르쳐야 한다.”<논어>

 

 

 

정치도 결국은 민생입니다. 민생과 더불어 ‘꿈꾸는 것’과 ‘공부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꿈꾸게 하고 진리 말씀을 배우고 공부하여 주님과 ‘우정의 여정’을 살게 하는 청소년 종교교육이 실천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착한 목자 예수님과의 우정입니다. 오늘 복음이 주님과 우정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힙니다. 예수님이 착한 목자라면 우리는 양들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주님과 우정의 열매가 영원한 생명의 선물이요, 이보다 더 좋고 확실한 영적 안전장치는 없습니다. 이런 예수님과의 우정은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와의 사랑의 일치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봅니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하느님의 귀한 선물들’이요, 우리에게 맡겨진 필생과제는 예수님과 우정의 심화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착한목자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을 착실히 살아낼 수 있도록 참 좋은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