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연신부님의 글

~ 부활 제 5주간 목요일 / 조명연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5. 22. 06:32

2025년 5월 22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예전에 수영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초보일 때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지만, 어느 정도 수영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욕심이 생기더군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수영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는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 가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몸을 움직였습니다.

 

책의 내용처럼 능숙하게 수영할 수 있었을까요? 상상과 실제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며칠을 계속해서 연습한 뒤에야 조금 비슷해질 수 있었습니다. 글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또 코치의 말만 듣고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땀 흘려 연습해야 가능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본다고 해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즉 행동으로 실천해야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혀 몰랐을까요? 또 전혀 듣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느님 말씀을 들었고 또 직접 읽으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위선자’라는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혹시 전혀 실천하지 않는 자기의 머리에만 머무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말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진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짜 사랑하셨기에 당신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한다고 응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응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말로만 ‘사랑한다’ 하면 될까요? 세상의 관점인 받는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될까요?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주는 사랑’이었고, 또한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고,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정 안에서, 삶의 일터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그 사랑이 넘쳐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아이리스 머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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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