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5. 31. 08:28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우리는 성공을 추구하면서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5월 30일 금요일 - 스물두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그림자를 끌어안기

 

우리의 그림자는 대개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리 의식 저 밑에 숨겨져 있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신부는 성공을 쫓는 것이 우리가 직면하는 가장 커다란 유혹 중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 살펴봅니다. 묘하게도 무력함과 겸손과 같이 예수님께서 중요시하셨던 것들이 오히려 우리의 그림자들입니다.

우리의 그림자 자아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속한 단체의 어떤 부분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감추거나 부정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대중 매체는 주로 성(sexuality)과 우리 육체 문제를 우리의 "죄스러운" 그림자로서 초점을 맞추지만, 이는 그림자에 대한 너무 좁은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천재성은 실패를 영적 성공의 새로운 정의에 통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창녀들과 세리들이 수석 사제들과 종교 지도자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마태 21,31 참조).

성공 중심의 우리 문화는 실패와 무력함, 그리고 어떤 형태의 가난함도 경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이 가난한 이들"을 찬양하시면서 당신의 산상수훈을 시작하십니다(마태 5,3)!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복음의 요점을 얼마나 철저하게 놓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폭력과 약함, 그리고 단순성은 서구의 그림자 자아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들어높이시는 바로 그것들을 회피하고, 자신과 세상에 강하고 안정적이며 성공적인 이미지를 투사하려고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성을 거부하고 대신 지배를 추구하며,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약속해 주는 지도자들을 선출합니다.

저는 왜 우리 사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다른 모든 이가 피해 달아난 그림자 자아 속으로 그토록 혁명적이고 선제적으로 뛰어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프란치스코는 자기 삶의 방식을 통해 "나는 무력함과 겸손, 가난, 단순함, 그리고 실패를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세상의 맨 밑바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모욕을 받을 때마저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유였고, 그가 "완전한 기쁨"이라고 일컬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그림자는 대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리 의식 저 밑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리치고 부정하고 업신여긴 것을 찾아 끌어안기 위해서는 크나큰 노력과 평생의 수양이 필요합니다. 실패 그 자체를 피하는 데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고 났기에 서구의 상향적 문화 안에서 우리의 그림자를 통합하려면 우리에게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할 것입니다. [1]

그림자 작업을 통해 슬퍼지고 초라해지는 것은 거짓 자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림자 작업은 거짓 자아의 게임을 끝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참된 자아, 즉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 안에 숨겨진"(콜로 3,3) 자아는 굴욕을 당할 힘이 있습니다. 참 자아는 그러한 굴욕적인 통찰력을 통해서만 자라납니다.

인류 여정 안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섀도우복싱(억압된 자아를 투사하는 훈련)을 하고, 또 우리의 모순들을 과감하게 직면하며, 우리 자신의 실수와 실패들을 친구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의 온전한 의식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투쟁이 없었던 사람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피상적이며 누구에게도 흥미를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견뎌내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통할 것도 별로 없고 호기심도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작업은 제가 말하는 "위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심을 매우 잘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들은 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절대 인식하지 못하지만, 겸손한 이들은 그것이 거룩함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그 거룩함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어렸을 적부터 질병을 안고 살아왔는데, 이는 마치 리처드 신부님이 최근에 '예언자의 길'에서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계구역에서 그림자의 계곡을 헤매며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질병을 경험했고, 가족의 희생 염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대 때에는 제 삶이 완전히 몰락해 버렸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 온 길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그 길의 아름다움까지도 보는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Cindy W.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Everything Belongs: The Gift of Contemplative Prayer, rev. ed. (Crossroad Publishing, 2003), 162–163.

[2] Adapted from Richard Rohr, Falling Upward: A Spirituality for the Two Halves of Life, rev. ed. (Jossey-Bass, 2024), 85, 8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Flavie Martin, untitled (detail), 2022,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는 조심스러운 호흡을 통해 희미한 빛을 받고 그림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지닌 선물에 이끌려 거기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명명할 수 있는 명확성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