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 7주간 목요일 - 일치의 정신이 실종되도 행복할까? / 김찬선 신부님 ~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에 이어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을 믿는 사람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성부께 기도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데
우리는 하나 되기를 바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만해도 옛날에는 하나 되지 못해서 문제였지 하나 되려는 열망은 컸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또 어떻게 컸었냐 하면 마치 분리되기 전의 엄마와 자녀처럼
공동체와 저를 따로 떼어 생각지 못할 정도로 그러니까 뭘 해도 같이하고
한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부작용과 갈등도 아주 컸었지요.
그러다가 불이 사그라들듯이 열망이 점차 사그라들며 지금은
꼭 같이해야 하나? 하나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우리 민족이 한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남북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가운데 지배적이었는데
이젠 그리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꼭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싫은 사람 또는 싫은 집단과 굳이 하나 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이 좋고 싫음을 넘지 못하는 곧 극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싫어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1970년 대만 해도 핵가족 시대라는 말을 쓰며 가족의 해체를 걱정했는데,
이제는 핵가족이 아니라 1인 가족 시대의 혼족 문화가 지배하게 되었지요.
혼밥, 혼술이 이제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문화와 사회가 된 것입니다.
사회와 문화가 이렇게 된 데는 정신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일치의 정신 대신 고립의 정신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걱정하셨지요.
“오늘날 세상의 가장 큰 위험은 온갖 극심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불행입니다. 이는 안이하고 탐욕스러운 마음과 피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과 고립된 정신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버립니다. 이는 신앙인들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위험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 곧 Spirit의 실종이고,
일치 정신의 실종이 문제이며,
이는 정신 곧 Spirit을 산다는 우리 영성 생활(Spiritual Life)에서도
정신 곧 Spirit이 사라지면서 일치의 정신도 현저하게 약화되었지요.
그래서 좋으면 사랑하고 그래서 사랑한다고 해야 할 것을 좋아한다고 하고,
싫으면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못하고 아예 관계마저 끊어버립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대사제의 기도는 엄청난 도전입니다.
일치의 정신을 우리도 포기하고 살까요?
포기하고 살아도 될까요?
포기하고 살아도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