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호명환 가를로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6. 5. 17:49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CAC 매일묵상

주님의 식탁에 초대받는 것은 참된 회심으로 초대받는 것입니다.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4일 수요일 - 스물세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모든 이를 포용하는 예수님의 식탁

예수님은 잔치를 여셨는데, 거기에 평판이 가장 나쁜 사람들을 맞아들이셨습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브라이언 맥라렌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포용하는 메시지가 지속적인 회심으로 우리를 초대하는지에 대해 성찰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분은 심지어 사회에서 가장 평판이 나쁜 사람들과 내쳐진 사람들과 죄인들을 환영하는 잔치를 베풀거나 참여하심으로써 경계가 없어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주십니다.

예수님은 종종 평판이 좋지 않은 죄인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 때문에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를 비판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인정이나 지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오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환대를 통해 그들이 변모를 경험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내치는 것은 사람들을 더 완고하게 하지만, 받아들임은 변모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당신의 현존 안으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문제들과 불완점과 더불어 받아들이고 환영함으로써 예수님은 당신의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전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분은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생각하고 - 또 생각하여 - 마음 깊이 성찰하라는 도전을 던져 주실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느님과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는 관계성을 통해 흘러나오는 변모를 경험하고 그 변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취지는 포용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충격적이고 추문이 될 만한 포용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가장 미천한 이에게서 시작해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종종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에 대해서도 경고하십니다. 그분은 "너희가 이 작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마태 18,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가능성은 실제입니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 나라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너무 종종 분리와 판단, 앙심과 배제의 도구라고 이해되는 오늘날에는 이런 걱정이 특별히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 이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고 가장 미천한 이에게서 시작하는 평화의 하느님 나라와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메시지를 배제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인간 역사 안에서 가장 급진적인 포용의 메시지로 해석하는데 말입니다.

맥라렌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성사적 본질을 예수님 사명의 급진적 포용을 존중해 주는 성사로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성사에 참여하기 위해 요구되는 깊은 투신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실제로 성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마음이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아야 할 꼭 필요한 요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의 관심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몰래 이 성사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생각과 느낌, 삶과 하느님 목장에 있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순수하게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세례성사가....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했나 봅니다.... 사람들에게 마음의 변화를 이루라고 요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예, 이 마음의 변화는 제 내면에서 일어난 것이고, 저는 저 자신이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리스도교의 성체성사 예식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기능을 하도록 지향된 것입니다. - 이는 사람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 앉아 같은 빵과 같은 포도주를 나누고자 하는 약속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공동체 안에 모아들이는 예수님의 전통을 계속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이런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이 사명과 꿈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일에 투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아픈 어머니 아래서 가난하게 자라온 저는 이제 제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세계 안에서 치유의 힘을 찾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길을 따라 숲속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종의 수양으로서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저를 꼭 껴안아 주시며 저를 반겨 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로 저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되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Mary W.

References

Brian D. McLaren, The Secret Message of Jesus: Uncovering the Truth That Could Change Everything (W Publishing Group, 2006), 162–163, 165–166.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astasia Chervinska, untitled (detail), 2022,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성체성사의 풍요로움은 언제나 모든이를 위해 차려진 식탁을 말하는데, 이 식사는 고요한 은총으로 모든 이를 맞이해 주는 식사이기에 여기에 오는 모든 이를 위해 늘 충분히 차려져 있는 식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