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알로이시아 곤자가 수도도자 기념일 / 정인준 신부님 ~
6월 21일 토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2,1-10
형제 여러분,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서로 범벅이 되어서”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돌보는 티모테오와 그레타 교회를 맡아 소임을 하는
티토에 대해서 특히 그들의 신앙과 성실함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소임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티모테오에게 전하는 말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5.8)
그리고 티도에게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티토 1,3.5)
루카 복음사가는 주님께서 몸소 가여야 하는 곳으로 다른 제자 일흔 두 명을
파견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셔야 할 일에 비해 일꾼이 적다는 말씀을 하시며 이리떼
가운데 양들을 보내는 심정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울러 당부의 말씀도 하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4)
주님의 당부의 말씀은 짧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법합니다.
왜냐하면 이리떼 같은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서 그래도 소임을 하려면 아무래도
돈도 있어야 하고 하다못해 옷가지, 신발도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낯선 곳에서는
인사도 챙기고 사람도 알아 두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하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요.
객지이지만 그곳이 좋다면 늘어 붙어있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실까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사도들이 자신의 소임인 복음 선포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인간적으로 흐리고 세속적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새로운 장소도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새로운 사람도 자꾸
만나다 보면 정들고 엮인다고요. 장소나 사람에게 익숙하다보면 자신의 소임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소홀히 할 수 있겠지요.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이 이 사실을 입증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평화를 베풀고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서 대접을 받으라는 주님의 말씀이십니다.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평화를 빌어주고 품삯을 받듯 대접을 받으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와 티모테오, 티도의 관계에서도 먼저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성실함이라봅니다.
주님의 제자들의 관계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파견한 자의 뜻을 잊지 않는 것이고 그 뜻을
전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속적으로 흐르다보면 그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 마저 서로 범벅이 되어서 감각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가난한 삶으로 늘 주님의 소명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