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 조재형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6. 21. 05:52


제1독서
<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12,1-10
형제 여러분,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4-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02년, 사목국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구역장, 반장, 레지오 단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강의를 준비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준비한 내용은 20분도 되지 않았고, 남은 시간은 진땀을 흘리며 채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의도 늘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강의를 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는 말, 맞는 것 같습니다. 


최근 꾸르실료 교육에서 다시금 그런 배움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후배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을 떠올렸고, 선배 신부님의 말씀에서는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깊은 연륜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풍부한 영상 자료를 준비했고, 선배 신부님은 사목 현장에서 길어 올린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주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시편 131편에 관한 묵상이었습니다. “저는 제 영혼을 가다듬고 가라앉혔습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같습니다.” 이 구절을 풀어 설명하면서 신부님은 성숙한 신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젖을 뗀 아기는 더 이상 엄마의 젖만을 보지 않습니다. 이제는 엄마 그 자체를 바라봅니다. 


즉,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주실 어떤 ‘보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체를 사랑하고 따르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 성숙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집착하는 많은 것들 ‘명예, 물질, 성취’ 이 모든 것은 사실 ‘젖’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 젖을 주는 ‘하느님’보다, 젖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시는 분이 아니라, 존재 자체인 하느님께 집중하는 신앙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삶은 이런 성숙한 신앙의 전형입니다.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신학생의 신분으로 로마의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다 병에 걸려 순교한 성인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헌신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영예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삶, 바로 그 삶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앙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유’를 오해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하느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상태, 곧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 온전히 그분께 의탁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세상의 노예가 되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단지 물질적 걱정을 넘어서, 삶의 ‘방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건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하라는 이 말씀은 곧 ‘삶의 중심축’을 바로 잡으라는 초대입니다. 성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어렵고 버거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할 수 있다는 성 바오로의 고백처럼,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은 일하십니다. 우리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벗고, 젖 뗀 아기처럼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오늘 하루, 젖을 찾는 아기가 아니라,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기처럼,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를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