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2주간 목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천상의모후(=수호천사) 2025. 6. 26. 06:23


제1독서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6,1-12.15-16
1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그에게 자식을 낳아 주지 못하였다.
사라이에게는 이집트인 여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하가르였다.
2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여보, 주님께서 나에게 자식을 갖지 못하게 하시니, 내 여종과 한자리에 드셔요.
행여 그 아이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가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아브람은 사라이의 말을 들었다. 3 그리하여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기의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를 데려다,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주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자리 잡은 지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4 그가 하가르와 한자리에 들자 그 여자가 임신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제 여주인을 업신여겼다.
5 그래서 사라이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은 당신 책임이에요.
내가 내 여종을 당신 품 안에 안겨 주었는데,
이 여종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업신여긴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당신 사이의 시비를 가려 주셨으면!”
6 아브람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소? 당신 좋을 대로 하구려.”
그리하여 사라이가 하가르를 구박하니, 하가르는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쳤다.
7 주님의 천사가 광야에 있는 샘터에서 하가르를 만났다.
그것은 수르로 가는 길가에 있는 샘이었다.
8 그 천사가 “사라이의 여종 하가르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저의 여주인 사라이를 피하여 도망치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10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한 몸
이제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여라.
네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다.
12 그는 들나귀 같은 사람이 되리라.
그는 모든 이를 치려고 손을 들고 모든 이는 그를 치려고 손을 들리라.
그는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맞서 혼자 살아가리라.”
15 하가르는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아브람은 하가르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16 하가르가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아 줄 때,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여섯 살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28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29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며칠 전 병자성사를 다녀왔습니다. 형제님은 의사에게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으시면서 형제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기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게 될 아내가 걱정되어서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내는 30년 넘게 투석을 받고 계신데, 그동안 형제님이 함께하며 매일 투석을 도와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떠나면, ‘아내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그 걱정에 눈물이 나셨다는 겁니다. 저는 형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예전엔, 이 성사를 ‘종부성사’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병자성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임하는 시간이고, 성령께서 힘과 평화를 주시는 시간입니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10년을 더 사신 분도 계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려 있고,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고 위로해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형제님과 그 가정 위에 하느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청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은 마카베오 하권의 신앙과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카베오 하권은 우리 신앙의 두 가지 교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활 신앙’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오늘은 마카베오 하권에서 드러나는 신학 사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박해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신앙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7형제와 그 어머니가 박해 속에서 목숨을 잃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실 거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단지 이 세상 삶만 바라본 게 아니라, 죽음 너머의 삶, 다시 살아날 그날을 믿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고통을 보면, 그냥 억울하게 죽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이 고통을 받음으로써 민족 전체가 정화되고,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 고통이 누군가를 위한 대속이 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도 이어지는 개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죽은 이를 위한 기도입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칩니다. “혹시 그들에게 죄가 있었을지 모르니,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자”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지금도 연미사를 드리고, 연도 바치며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 있는 이들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기억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성전과 율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장소, 바로 성전이 더럽혀졌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그것을 다시 정화했을 때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성당이 왜 중요한지, 성체가 왜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입니다. ‘천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다.’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보면, 하느님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힘든 시기에도 역사 안에서 함께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카베오기 하권은 가정과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우리도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신앙 선배로서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 책은 성전과 율법, 공동체의 신앙,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을 강조합니다. 천사가 나타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감동적인 장면은 일곱 형제의 어머니입니다. 


자녀들을 끝까지 신앙 안에서 지켜내는 모습. 우리도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선배로서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그렇습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하는 신앙. 그 신앙이 바로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지 입술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으며 눈물 흘리던 형제님처럼, 가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그 삶. 그 삶이야말로 부활의 신앙이고,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신앙의 반석 위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