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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말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7년 8월 22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제1독서 판관 6,11-24ㄱ

그 무렵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땅 오프라에 있는 향엽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 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천사에게 물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면, 저와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19 기드온은 가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기는 광주리에, 국물은 냄비에 담아 가지고 향엽나무 아래에 있는 그분께 내다 바쳤다.
20 그러자 하느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렇게 하였더니, 21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내밀어, 그 끝을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그 큰 돌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주님의 천사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22 그제야 기드온은 그가 주님의 천사였다는 것을 알고 말하였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그래서 기드온은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


복음 마태 19,23-30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몹시 놀라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 그때에 베드로가 그 말씀을 받아 예수님께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30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2008년 영국의 리즈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피실험자 그룹에게 넓은 실내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말이나 몸짓을 주고받지 말고 그냥 걷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구팀은 사전에 이미 일부 피실험자들에게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지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었지요.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방향을 알고 있는 몇몇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양이나 새처럼 소수의 개인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면서 무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지닌 개인’이 단 5%만 있어도 200명에 이르는 군중들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95%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정보를 지닌 개인이 이끄는 무리를 따라간다는 것이지요.

이 실험 내용을 보면서 왜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되는 가톨릭 신자들이 세상에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주님께서 제시하는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 안에서 죄악이 가득한 이유는 10% 이상이 되는 가톨릭 신자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주님의 뜻은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돈이나 명예 등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보여주신 사랑을 향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처럼 생활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이러한 삶은 불가능한 삶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합니다. 나의 행동 하나가 많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실제로 많은 성인 성녀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런데 ‘나는 성인 성녀가 아니야.’라는 단호한 결정으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영향, 하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텅 빈 가슴은 물질로는 절대로 채워지지 않아요. 가슴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절로 채워지죠(김상운).


강화 해변입니다.


성공의 의미

독일인 의사이자 작가인 에카르트 폴 히르슈하우젠은 ‘성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성공’으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나이와 상당부분 관계가 있습니다. 인생은 돌고 돕니다. 한 살짜리 아기의 성공은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고, 25세에는 성행위, 50세에는 돈이 성공이며, 75세에는 여전히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그리고 90세에는 다시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 성공입니다.”

인생은 돌고 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성공이란 것이 별 것 아닐 수 있다 싶습니다. 걷는 것, 대소변 가리기, 성행위, 돈 벌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등등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별 것 아닌 것이 되지 않을까요?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정하는 성공을 따라가면 어떨까요?


강화나들길 걸으러 오세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