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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24주간 금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9월 18일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토끼 같은 자식, 여우 같은 마누라.” 어렸을 때,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라는 노래로 하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여우고개’라는 지명도 흔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여우는 인간 삶에 가까웠고 또 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 여우는 멸종되었습니다. 1970년대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으로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여우는 동물뿐 아니라 과일, 곤충까지 먹는 잡식성 동물이라 생존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멸종된 이유는 왜일까요? 한때 여우 목도리가 엄청나게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외화벌이를 위해 여우를 잡아 목도리를 만들었는데, 그때..
~ 연중 제 24주간 금요일 - 살 희망과 죽을 희망 / 김찬선 신부 ~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참으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찌 부활을 의심하고,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서 어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의심하느냐 그 말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정말 죽은 이들의 부활이 있는지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때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었고 그래서 의심이 되었지만하느님 존재를 의심 없이 믿는 지금은 부활을 의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으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제 생각에 두 가지 이유 곧 하나는 하느님 능력에 대해 의심하거나다른 하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해 의심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존재..
~ 연중 제 24주간 목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안데르센 동화 ‘미운 오리 새끼’를 잘 알 것입니다. 오리들 틈에 태어나 그들처럼 살아보려고 했지만, 결코 오리들과 같아질 수 없었기에 따돌림당해 상처받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강물에 비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고귀한 백조임을 깨닫는 그 순간, 그의 모든 방황은 비로소 끝이 납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떨까요? 세례를 통해 이 세상에 죽었고, 하느님의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이면서 다시 세상 사람들처럼 살려고 한다면, 백조가 백조인지를 모르고 오리처럼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인은 자기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연중 제 24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오상 축일 ) - 우리가 받아야 할 세 가지 은총 / 김찬선 신부 ~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오늘 저는 독서와 복음을 읽으면서그리고 바오로 사도와 복음의 죄녀와 오늘 오상 축일을 지내는 프란치스코,세 분이 받은 은총의 공통점을 묵상하면서 은총을 세 가지로 묵상해봤습니다. 회개의 은총,복음의 은총,사랑의 은총. 은총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첫 번째 은총이 회개라는 말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회개를 시작하게 하셨다고 얘기하고,바오로는 갑작스러운 주님의 방문에 박해자에서 선포자로 바뀌었으며,복음의 여인은 주님을 스스로 찾아왔고 눈물로 주님 발을 적셨습니다.셋 다 스스로 회개한 게 아니라 주님에 의해 회개케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이들에..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이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15세기, 16세기에 영국은 범죄 없는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죄인들을 미국으로 유배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수가 자그마치 6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독립한 후에는, 이제 죄인들을 호주로 보냈습니다. 사실 그 시대 영국의 형벌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미워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철저히 가진 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5만 원 정도의 물건을 훔치면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죄도 엄격하게 처벌하다 보니 국가 교도소에 빈자리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대부분 사형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주로 165,000명이나 보냈습니다. 강력 범죄자가 아닌 대부분 가벼..
~ 연중 제 24주간 수요일 - 사랑도 철이 들어야 한다 / 김찬선 신부 ~ 오늘 독서는 코린토 13장의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인데첫째로 성령의 언어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그건 성령의 언어가 아니라 깡통 소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빈 깡통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우리말 바로 그것입니다.저는 이것을 갈수록 느낍니다. 옛날에 사랑이 없는 말들이 많았을 때 말은 그럴듯했겠지만의미를 주지 못했기에 열매를 맺지 못했던 기억이 많습니다.특히 사람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생기를 주지 못했습니다.사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욕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영적으로 사랑의 철이 들면서 뭔 말을 해도사랑으로 하니 그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는 ..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부 복사들이 미사 전에 저를 급하게 찾는 것입니다. 복사방에 커다란 벌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희가 잡아.”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깜짝 놀라면서 “아니! 그렇게 큰 벌을 저희가 어떻게 잡아요? 또 벌에 쏘이면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에 끌려서 어쩔 수 없이 복사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힘들게 벌을 잡았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벌에 쏘여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 큰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직접 잡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 앞에서 강한 척 보이려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저 혼자 있었다면 ..
~ 고통의 성모마리아 축일 - 고통을 함께하는 사랑 / 김찬선 신부 ~ 오늘 고통의 성모 축일을 지내면서 저의 사랑을성모님의 사랑과 비교하며 성찰해 봤습니다. 지금의 저는 옛날의 사랑과 비교할 때 참 좁아졌습니다.옛날에는 저 지구 반대편의 고통까지도 함께하려는 사랑이었는데지금의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하려는 정도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저의 사랑이 좁아지고 작아지고 줄어든 것 같은데가까운 이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더 이해하는 면에선 좋아졌습니다. 곧 욕심이라는 불순물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에 사랑이 부족했는데지금은 욕심이 많이 줄어든 만큼 그들의 고통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이웃의 고통을 보자고 새해를 시작하며매년 다짐하지만 매년 실패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