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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너 피부가 정말 좋다. 그런데 왜 화장하는 거야?” 우리 성당의 중고등학생들을 잘 보면 거의가 화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부가 너무 좋은데도, 그 좋은 피부 위에 화장하는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말을 들은 아이가 말합니다. “신부님! 제 피부가 뭐 좋아요? 최악이에요. 여기 뽈록 나온 여드름 안 보여요?” 이 아이는 이마에 숨겨진 여드름 하나 때문에 최악의 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여드름 하나가 피부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은데도,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요? 작은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자기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크고 중요한 것을 보지 ..
~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 하느님의 작품의도와 우리의 선 의지가 일치하는 / 김찬선 신부 ~ 오늘 독서 말씀에서 ‘한때(once)’라는 말이 눈에 들어와‘한때’ 묵상 곧 우리 인생은 너나없이 ‘한때 인생’이라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인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한때는 이렇게 살았지만 저렇게 살게 되고,한때는 저렇게 살았지만 이렇게 살게 되는 그런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너나없이 다 한때 인생을 사는데문제는 그것이 회개일지 타락일지가 문제입니다. 한때 죄 가운데 살았지만 회개하여 은총의 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한때 신앙인답게 살았지만 어떤 계기로 죄 중에 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오늘 독서는 에페소 신자들이 개과천선한 사실을 얘기합니다.“우리도 다 한때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
~ 연중 제 29주일 (전교주일 ) / 조명연신부 ~ 2026년 10월 18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갓 태어난 아기의 시력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색깔을 구별 못 하고, 시야도 흐립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눈에 힘을 주어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20~30c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물체를 보게 됩니다. 바로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부모의 얼굴과 아기 얼굴 사이의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아기는 빤히 쳐다봅니다. 결속과 유대의 대상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눈에 힘을 꽉 주고 또 크게 뜨고 누군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결속과 유대를 느껴야 이 세상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눈에 힘주지도 않고, 눈을 감고만 있습니다. 아예 관심을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이 어디 계셔?”..
~ 연중 제 29주일 - 선교할 수록 행복이 커지는 선교/ 김찬선 신부 ~ 모순되게도 그래서 부끄럽게도 저는 선교에 대한 소명 의식을40살 가까이 되어서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하느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선교지 곧 외국은 빼놓고 국내 소임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때는왜 그랬냐 하면 외국에서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 때문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 마음이 없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교 의지와 의식이 없었던 것입니다.솔직히 그때까지 저는 휴머니스트였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설사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그리스도인이기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인이기에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나만 행복한 것이 행복..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누구보다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회사 동료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자기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칭찬이 아닌 자기 단점에 관한 것이 아닙니까? 이 동료를 소중히 대했고, 동료 역시 자기를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회사의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고욕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 동료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더 큰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깝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한 것은 ..
~ 연중 제 28주간 토요일 - 응달에서 양달로 / 김찬선 신부 ~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어제 독서에서 그리스도론을 에페소 신자들에게 장엄하게 전해준 바오로 사도는오늘 독서에서는 에페소 신자들을 위해 자기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얘기하고 있는데 이 편지를 읽는 내내 참 따듯하고 흐뭇합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것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하느님과 하느님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신자들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받게 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되는.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알게 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알게 되면 안 좋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오죽하면 아는 게 병이고..
~ 연중 제 28주간 금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어떤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이번 시험에서 1등 하면 저의 부탁 하나 들어주세요.” 아이는 엄마가 당연히 이 조건을 수락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단호하게 “안 돼.”라면서 거절하셨습니다. 아이는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안 되는데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맞으면 엄마가 기쁠 것이고, 따라서 선물 하나 해 줄 수 있잖아요?” 엄마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부 잘해서 혜택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 자신이야. 그런데 왜 엄마가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해? 그런 마음이면 공부하지 마.” 이 말에 아이는 진짜로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성적은 당연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런데도 꿈쩍하지 않는 ..
~ 연중 제 28주간 금요일 -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주님의 벗들 / 김찬선 신부 ~ 어제까지의 복음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에 대한 불행 선언입니다.오늘 복음은 어제 불행 선언 때문에 앙심을 품고 어떻게든지 주님을 옭아매려는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시며 두려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이런 표현을 하십니다.“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참 따듯하고 고맙습니다.우리도 제자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불러주시면 우리는주님의 벗이라는 자의식을 그에 걸맞게 가져야겠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나의 벗이라고 하시는데우리가 개뿔 무슨 벗이야! 하고 말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벗의 지위를 우리가 걷어차는 불행이겠지요. 어제 주님을 적대시하는 율법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