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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령의 날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2일 위령의 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주 충격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좋아했지요. 하지만 늙고 아픈 사람이 끝없이 살아남아 병원이나 요양시설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죽음이 멈추자, 고통이 끝나지 않고, 사회 질서와 돌봄 체계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프지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자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관계에 더 마음을 쓰고, 오래 미..
~ 위령의 날 - 우리가 진정 천주교 신자라면 / 김찬선 신부 ~ 아시다시피 위령의 날은 세 번의 미사를 세 가지 양식으로 드릴 수 있는데올해는 세 번째 양식으로 강론하려고 합니다.어제 모든 성인 날이 천국의 문턱을 낮추는 축일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 번째 미사 복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동정녀 비유인데,여기서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어제 모든 성인의 날에 제가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을 뿐 아니라문턱까지 낮춰져 있음을 얘기했는데오늘 복음은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아예 문이 닫혀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어제 저의 얘기와 오늘 복음이 다르지 않습니까?어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있다고 하고,오늘 복음은 어떤 이에게 문이 닫혀있다고 하니 ..
~ 모든 성인 대축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어제는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노트 한 권에 저의 글로 모두 채웠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써지지 않은 깨끗한 노트였습니다. 그냥 종이 묶음에 불과했던 이 노트에 글을 적어 나가면서 노트를 다 채웠을 때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노트 한 권을 다 쓰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말이지요. 우리의 삶도 이렇게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다 쓴 노트를 꺼내어 읽다 보면 부끄러운 내용도 참 많습니다. 맞춤법도 틀리고, 무슨 내용인지를 도대체 알 수 없는 글도 있습니다. 우리 삶도 좋은 이야기로만 또 잘된 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역시 나의 삶이기에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 세..
~ 모든 성인의 날 - 낮아진 성인 문턱, 천국 문턱 / 김찬선 신부 ~ 모든 성인의 날은 성인의 문턱을 낮추는 축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왜냐면 특별한 사람만 성인이 되고 성인인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다 성인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감사송도 이렇게 노래합니다.“나약한 저희도 성인들의 뒤를 따라 영광을 기뻐하며그들의 도움과 모범으로 힘을 얻어 활기찬 믿음으로영원한 고향을 향하여 나그넷길을 서두르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문턱 또는 성인 됨의 문턱이라는 말의 뜻을 보겠습니다.문턱이란 집이나 방으로 들어갈 때 문을 통과하고 문턱을 넘어야 하듯이성인도 어딘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들어가야 하는데 거기에 문이 있고 턱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들이 들어가려는 곳이 어디입니까?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하느님 나라..
~ 연중 제 30 주간 토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어느 신부의 앨범을 우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안에 그 신부의 어렸을 때부터의 역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다른 신부도 지나가다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보던 신부가 어렸을 때의 사진을 보고는 곧바로 앨범의 주인인 신부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어?” 사진 속의 아이는 너무 귀엽고 예쁜데, 현재 신부의 모습에서는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늙었고, 또 험상궂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힘든 일이 많아서였을까요?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만든 얼굴입니다. 외모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입니..
~ 연중 제 30주간 토요일 - 죽어도 좋은 나, 밑에 있어도 좋은 나 / 김찬선 신부 ~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고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합니다.더 정확히 얘기하면 일찍 죽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는 더 좋지만내가 더 사는 것이 이웃에게 좋다면 사는 것도 좋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바오로 사도가 참 부럽고,저도 거침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저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왜냐면 이런 바오로 사도를 부러워하는 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바오로 사도를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 연중 제 30주간 금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성경 읽는 것을 신자들에게 늘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신자가 자기들은 수도자도 아닌데 왜 굳이 성경을 읽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마치 수도자들만을 위한 책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 가운데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성경이 더욱 필요합니다.” 세상의 소음은 정말로 큽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에 거리를 두기에 그만큼 주님 말씀을 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세상 소음에 묻혀서 또 그 소음에 집중하게 되면 주님의 말씀은 자연스럽게 들을 수 없게 됩니다. 그저 세상이 추구하는 것만을 쫓으며 살게 될 것입니..
~ 연중 제 30 주간 금요일 - 우리가 바라야 하고 빌어야 할 것 / 김찬선 신부 ~ 어제 독서로 에페소서를 끝내고 우리 전례는 오늘부터 필리비서를 읽기 시작하는데바오로 사도는 오늘도 편지의 시작을 자기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말로 하고,이어서 편지를 받는 신자들에게 축복하는 말을 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아시다시피 이 축복은 우리 미사의 인사 두 번째 양식 곧“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와 정확하게 같습니다. 이는 이 축복의 인사가 우리가 해야 할 축복의 인사에 본보기라는 뜻이겠지요.우리의 가장 짧은 인사가 ‘평화를 빕니다.’이고,프란치스칸 인사도 ‘평화와 선’인데 이 짧은 인사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은 우리가 하는 것으로서 복을 내려주시도록 비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