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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31주간 목요일 - 애착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아니다 / 김찬선 신부 ~ “나는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이 말씀이 옛날 공동 번역 성서에서는 더 자극적인 말이었습니다.옛날 공동 번역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여긴다고 했지요. 어쨌거나 이 말씀을 서원식 독서로 읽었기에 아주 비장하게 받아들였습니다.정말 이제부터는 주님 외에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겨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왜 쓰레기로 여길까? 생각이 듭니다.주님보다 그것들을 더 귀한 것으로 여기기에 쓰레기로 여기는 것이지요.또 너무 집착하거나 애착하기에 쓰레기로 여기려고 애를 쓰는 것이지요. 지금의 저는 쓰레기로 여길 생각이 별로 없고,또 그러기 위해서 애까지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그것들을 주님보다 귀하게 여기지..
~ 연중 제 31주간 화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기억할 것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에 따라, 종종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고통 역시 도덕적 판단에 포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다면, 이는 사랑과 헌신입니다. 하지만 대를 위해 남을 희생시킨다면 폭력과 불의가 될 수 있습니다. 인사이동이 되어 새로운 신부가 본당 신부로 왔습니다. 그런데 전의 본당 신부와 다른 모습으로 사목하시는 것입니다. 전례도 달라졌고, 본당 행사에도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신자들이 신부님께 항의했습니다. 이에 신부님께서는..
~ 성 가를로 보르메오 주교 기념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4일 성 가를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가 주장한 나치즘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인간을 인종에 따라 서열화하고, 우월하다고 규정한 ‘아리아인 독일 민족’을 강력한 지도자 아래 결집시켜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 영토를 확장한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도 이 말도 되지 않는 주장으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수많은 사람이 이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이 말에 공감이 가고 이해되었기 때문일까요? 어느 날 갑자기 집단적으로 믿은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경제적 절망, 전쟁 패배의 굴욕,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오래된 반유대주의 그리고 선전과 홍보 때문이..
~ 연중 제 31주간 수요일 -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는 / 김찬선 신부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호의를 가지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고 합니다.곧 의지, 달리 표현하면, 할 마음을 일으키시고 실천할 힘도 주신다고 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렇게 되는데문제는 하느님의 호의를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은 호의를 베푸시려는데 우리에겐 그것이 호의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하시려는 호의인데우리는 호의호식 곧 호강을 호의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오로 ..
~ 연중 제 31주간 화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동생 루드비그가 사망했을 때, 한 프랑스 신문은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 기사를 냈습니다. 머리기사는 “죽음의 상인이 죽음을 맞이하다.” 였습니다. 부고 기사 앞머리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빨리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덕에 부자가 된 노벨 박사가 어제 사망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노벨은 이 기사를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 발명가는 자신이 ‘죽음의 상인’이라고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가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자극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전 재산으로 노벨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죽음 뒤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자기가 가진..
~ 연중 제 31주간 화요일 - 주님의 식탁에서 식사하면 좋을 까? / 김찬선 신부 ~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대표적인 그리스도 찬가입니다.여기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고집하지 않고오히려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비우심과 낮추심을 얘기하지만저는 낮추심이 실은 같이하심이요비우심이 사랑이 아닌 다른 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추심, Kenosis는 그 자체로도 대단한 감동을 주지만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낮추셨을까를 생각하면 더 감동적입니다. 사실 저는 사랑과..
~ 위령의 날 / 조명연 신부 ~ 2026년 11월 2일 위령의 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주 충격적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죽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좋아했지요. 하지만 늙고 아픈 사람이 끝없이 살아남아 병원이나 요양시설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죽음이 멈추자, 고통이 끝나지 않고, 사회 질서와 돌봄 체계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프지만,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자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관계에 더 마음을 쓰고, 오래 미..
~ 위령의 날 - 우리가 진정 천주교 신자라면 / 김찬선 신부 ~ 아시다시피 위령의 날은 세 번의 미사를 세 가지 양식으로 드릴 수 있는데올해는 세 번째 양식으로 강론하려고 합니다.어제 모든 성인 날이 천국의 문턱을 낮추는 축일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 번째 미사 복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동정녀 비유인데,여기서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어제 모든 성인의 날에 제가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을 뿐 아니라문턱까지 낮춰져 있음을 얘기했는데오늘 복음은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아예 문이 닫혀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어제 저의 얘기와 오늘 복음이 다르지 않습니까?어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있다고 하고,오늘 복음은 어떤 이에게 문이 닫혀있다고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