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선(레오나르도) OFM (1686) 썸네일형 리스트형 ~ 연중 제 6주간 목요일 - 구원의 길 / 김찬선 신부님 ~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내게서 물러가라”는 주님 말씀을 직역하면내 앞에 있지 말고 내 뒤에 있으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가실 길을 앞에서 막지 말라는 뜻입니다.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하는데 그 앞을 막고 있으니 뒤로 빠지라는 말입니다. 축성 생활 문헌을 보면 주님의 길을 두 가지로 얘기합니다.첫 번째 길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께(A Patre, ad Patrem)’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왔다가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인데그 사이에 있는 두 번째 길이 ‘타볼산으로부터 해골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길이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라면피할 수 없는 길이요, 반드시 가야 할 길인데.. ~ 연중 제 6주간 수요일 - 이전으로 돌아가지 마라 / 김찬선 신부님 ~ 지난주 금요일 우리는 마르코 복음 7 장 끝부분 얘기를 들었습니다.여기서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와 입을 열어주십니다.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서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8장의 얘기로 눈먼 이를 눈 뜨게 하시는 얘기인데오늘은 주님께서 그를 마을 밖으로까지 데리고 나가 거기서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두 얘기 모두 다른 복음에는 없고 마르코 복음에만 있는 얘기이고,두 얘기 모두 주님께서 그들을 따로 데리고 나가 은밀히 고쳐주시는 얘기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주님의 은밀함은 마르코가 좋아하고 강조하는 것인데두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의 은밀한 사랑입니다.내밀한 사랑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주님의 공적이고 공개적인 사랑도 좋고 필요합니다만내게는 .. ~ 연중 제 6주간 화요일 - 두들기시고 깨우는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복음 말씀에는 주님의 깊은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배어있습니다.사실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과 헤로데와 같은 사람들이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제자들마저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것이었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다음,제자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일일이 나열하시며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런데 맨 마지막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오늘 복음은 8장 14절 이하인데 8장 1절이 4천 명을 먹이신 기적.. ~ 연중 제 6주간 월요일 - 요구하지도 않고, 요청하는 / 김찬선 신부님 ~ “그때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들은 그리 좋은 말들이 아닙니다.‘논쟁’, ‘시험’, ‘요구 이런 표현들인데 바리사이들이 흔히 하는 짓입니다. 이 대신 그러니까 논쟁 대신 담화 또는 나눔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시험하지 않고 믿으면 얼마나 좋고,믿지 못하더라도 시험 대신 알려고 애쓰고 질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리사이들을 볼 때 더 안타까운 것은표징을 요구하지 않고 요청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입니다.그랬다면 주님도 그들을 버려두고 떠나지 않고 표징을 보여주셨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우리가 겸손하고 진실한 신앙인이라면주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표징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말할 것.. ~ 연중 제 5주간 토요일 -하느님께서 주신 벌, 하느님께서 주신 고통 / 김찬선 신부님 ~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열매를 따 먹었으니,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오늘 창세기는 고통의 기원과 이유에 관해서 얘기해주는데죄의 벌로서 고통이 주어짐을,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셨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다른 점입니다.불교에서 고통은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고통이란 자기 업보(業報)라는 말입니다. 선업을 쌓았으면 고통이 없을 텐데 악업을 쌓았기에 고통이 있다는 말이겠지요.틀린 말이 아니고 창세기를 믿는 그리스도교 또한 죄지었기에 고통을 받는다고얘기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셨다고도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의 고통이 업보라면 그리스도교의 고통은.. ~ 연중 제 5주간 금요일 - 욕망과 갈망의 차이 / 김찬선 신부님 ~ 독서와 복음에서 모두 열림이 일어납니다.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는 눈이 열려 자기의 알몸 곧 죄의 부끄러움을 보게 됩니다.“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복음에서는 눈이 열려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보고 입은 찬미를 드립니다.“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이것을 볼 때 누구는 자기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을 보고,누구는 자기 죄를 보고, 누구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며,누구는 장점을 더 보고, 누구는 단점을 더 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볼까요? 제 생각에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봅니다.자기 안에 미움이 있으면 모든 것을 밉게 보고,자기 안에 사랑이.. ~ 연중 제 5주간 목요일 - 자극을 받고, 보고 배우라고 / 김찬선 신부님 ~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 하신 것이 맞을까?맞는다면 주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을지라도 복음사가들이 이 복음은 빼고전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복음을 그대로 전해준 뜻은 뭘까?실제로 이방인을 상대로 쓴 루카 복음은 이 얘기를 빼고 전해주지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뜻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 저는 ‘먼저’라는 말에 처음으로 눈길이 갔습니다.지금까지 이 복음을 정말로 여러 차례 읽었지만 실로처음으로 ‘먼저’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먹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다만 유대인들을 먼저 먹이시겠다는 뜻이고,그런 .. ~ 연중 제 5주간 수요일 - 만들어버리고, 버려버리는 나 / 김찬선 신부님 ~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에서는 부정한 음식 규정이 오늘날도 엄격하여이슬람에서는 할랄 식품이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코셔 식품이 있습니다. 이 규정은 예수님 당시도 엄격했는데 오늘 복음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그런데 이와 관련한 예수님의 입장은 매우 자유롭습니다.왜냐면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이스라엘이 음식을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가를 이유가 없습니다.어제와 그제 창세기를 읽을 때 봤듯이 하느님께서는모든 것을 선으로 창조하셨으며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말씀하셨듯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가운데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더럽지요. 그러고 보면 ‘나, Ego’가 항상 문제이고 Egoism이 문제입니다.이 ‘나’가 하느님.. 이전 1 2 3 4 ··· 2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