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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말씀

~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

2017년 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콜로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음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언젠가 어떤 물건을 인터넷에서 구입했습니다. 필요하기도 했지만 전에부터 꼭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습니다. 가격도 적당했고, 성능 역시 최고였기 때문에 제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어떤 분이 제 것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같은 것을 쓰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저는 “이 물건 정말로 좋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 물건을 저는 잘못 구입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보니 B사의 제품이 성능이나 사양이 더 좋으면서도 가격이 더 싸더군요.”

그러면서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서 비교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분의 말씀과 또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한 뒤 저의 만족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의 만족감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만족도의 하락과 함께 후회가 밀려온 것이지요. 물건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만 더 검색을 해 볼 걸. 사람들에게 좀 물어볼 걸....’ 등의 생각들이 계속 떠올려졌습니다.

비교는 이렇게 자신의 만족도를 떨어트리고 후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네요. 특히 이기심에서 나오는 비교를 통해서 좋았던 인간관계가 무너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와의 비교를 통해서 괜히 미움의 감정이 나오고, 그래서 섣부른 판단과 단죄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시선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안식일 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구석으로 몰고 가서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시기심에서 시작된 비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들이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들, 더군다나 이제까지 사람들로부터 받아왔던 관심과 사랑을 예수님께 뺏겼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음에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단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교를 통해 자신들의 적대자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향해서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향한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한 없이 오그라든 마음을 쭉 펴서 이제는 주님을 받아들이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음이 오그라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이기심과 시기심에 나오는 비교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오그라진 마음을 쭉 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운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흠만 보는 것은 우리 마음을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름없다(라로슈푸코).


개울가에서...


거울은 스스로 웃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이러한 내용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청년이 집을 떠나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나기 전날, 큰 거울이 있는 거실로 아들을 부른 후에 물었습니다.

“네 얼굴을 잔뜩 찡그린 후 거울을 보렴, 어떤 기분이 드니?”

“글쎄요. 제 얼굴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데요.”

“그럼 거울에 비친 모습을 웃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버지의 질문에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제가 웃으면 되지요.”

그러자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상대할 땐 언제나 거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라. 거울이 스스로 웃을 수 없듯이 상대방도 그냥 웃는 법이 없지. 아들아 상대방을 웃게 하려면 먼저 미소를 지어야 한다. 어떤 불친절한 사람에게도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란다.”

얼마나 웃으십니까? 어떤 분은 웃을 일이 도통 없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웃을 일이 참 많습니다. 그냥 나의 모습을 보고서도 충분히 웃을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크게 웃어보시면 어떨까요? 나에게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이에게도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