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그를 화나게 할 의도 없이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인데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사람은 아무 반응이 없는데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화를 내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고 말한 나는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모를 때가 있지요.
그것은 그가 내가 한 말과 어떤 연관이 있기 때문이고,
뒤집어 얘기하면 어떤 식으로든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고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왜 반응하겠습니까?
내가 말한 것이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거나
전에 받은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데
나의 말이나 행위가 그 덧나 있는 상처를 건드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그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한 것으로 인해 원수지간이 될 수 있는데도,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고 원수로 여기며 복수하려고 드는데도,
전혀 상처받지도 않고 원수로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다윗은 어찌 그럴 수 있는 것입니까?
다윗은 사울의 죽음에 오늘 어찌 오히려 슬퍼할 수 있는 겁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어제 말씀드렸듯이 사울은 다윗을 보고 있지만
다윗은 하느님께 치고 올라가 하느님으로부터 사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세상을 보면 부질없어 보이듯
하늘에서 보면 아웅다웅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법이지요.
높이 나는 새가 산과 강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또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괜히 싸우지 않습니다.
이미 행복한데 괜히 싸울 이유가 없고
싸워서 자기 행복을 자기가 깰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누가 나에게 원수가 되는 것은 그가 한 일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거나
사울에게 다윗처럼 그의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이 무슨 짓을 해도 하느님 때문에 자기는
너무 행복하기에 싸울 이유도 원수로 여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죽자사자 덤비는 사울이 가련할 뿐이고,
그래서 오늘 허망하게 사울이 죽자 슬퍼합니다.
한 나라의 임금인 그가 채신머리도 없이 싸우자는 것이 가련했고,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이가 그러다 죽은 것이 그렇게 슬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영적인 권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원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당하는 해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럴 수 있는 사람 곧
하느님으로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오늘 사울과 다윗을 통해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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