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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강론>(2026. 2. 17. 화)(루카 12,35-40)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큰 복’입니다.』 1)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설날의 인사말에서, 성모송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라는 기도문이 연상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한 분”이시고(루카 1,28),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십니다(루카 1,42).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 또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모든 복의 원천’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가장 큰 복’입니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먼지처럼 사라질 허무한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사탄이 준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올가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우리는 성모님 쪽에서도 주님과 함께 계셨음을(사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은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시는 분인데, 그 ‘함께 계심’은 인간 쪽에서 ‘함께 있음’으로 완성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성모님은 모든 이의 모범이신 분입니다. <성모님이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신 것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가까이에서 주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만 편애하신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라고 권고합니다(야고 4,8). 이 말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에게만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3)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바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시거나, 멀리 떨어져 계시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사도들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호수에서 풍랑을 겪었을 때의 일이 좋은 예입니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4,37-40).”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그 당시 제자들 입장에서는,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라는 말은, 기도의 응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신 것은 제자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믿으셨기 때문이고, 또 거센 돌풍이 일어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것이 아니라, 그냥 노를 젓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제자의 태도입니다. 물론 힘들기는 하겠지만, ‘믿는 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경우가 있는데(마태 15,23), 침묵도 응답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4)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꽤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루카 24,16).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아직 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바로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요한 20,14). 슬픔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다면, 아니면 다른 곳만 보고 있다면,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옆에 안 계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신앙인이라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얻어 누리는 ‘신앙의 지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송영진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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