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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말씀

~ 사순 제 2주간 화요일 / 조명연 신부 ~

2026년 3월 3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어느 형제님께서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에게 20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 심하게 다투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을 더는 만날 생각도 없고, ‘친구’라고 부르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이분도 가톨릭 신자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또 자기 삶에서 내치겠다는 것이 옳지 않아 보여서 성당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친구가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혹시 금반지 있어? 있으면 혹시 100% 금이야?”

 

“금반지 있지만, 100%는 없지. 18K, 21K, 28K 이런 식이잖아.”

 

“그러면 순금이 아니니 버려야겠네? 이물질이 들어간 거잖아?”

 

“무슨 말이야? 이물질이 들어가도 금이지.”

 

“친구도 그래. 나에게 100% 딱 맞추는 사람, 100% 완벽한 사람만 친구일까? 지금 네 모습은 100% 순금이 아니라고 그냥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똑같아.”

 

하느님께서도 100% 당신의 뜻을 따라는 사람만을 받아주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거의 0%에 가까워도 당신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는 너무나도 큰데, 우리는 자기에게 100% 함께해야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과연 그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마태 23,2.3)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 자체는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에게만 엄격한 율법 준수를 강요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어놓으면서 ‘나는 이렇게 경건하다’라는 식의 보여주기식의 쇼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또 윗자리, 호칭에 집착하여 명예욕에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남들에게는 100% 완벽한 율법 준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보여주기식의 쇼를 하고, 병자나 죄인을 향해 100% 완벽하지 않다면서 단죄하는 것은 거짓이며, 위선입니다. 그래서 스승, 아버지,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 호칭은 하느님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분들의 대리자일 뿐,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는 100%를 요구하고, 정작 자기는 0%의 실천일 뿐이라면 하느님 안에 온전히 머물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자기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늘 자기 모습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2)

 

 

오늘의 명언: 내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나는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헬렌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