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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들의 말씀

~ 사순 제 4주간 수요일 / 송영진 신부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강론>(2026. 3. 18. 수)(요한 5,17-30)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지금이 바로 그때다.”』

1) 이 말씀들을 간단하게 줄이면,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곧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판은 곧 아버지 하느님의 심판이고, 예수님께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것은 곧 아버지 하느님께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2)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니, 나도 쉴 수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이라 해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그분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다.”(“하느님이신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작업을 마치시고 나서 ‘이렛날에’ 쉬셨는데(창세 2,2),


그것은 창조 작업에 대해서이고, 이 세상을, 또 인간들을 보살피는 일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하신다는 것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기본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만일에 한 순간이라도 하느님의 사랑이 중단되면? 그 순간 우주 전체가 망할 것입니다.


바로 그처럼 ‘예수님의 사랑’도 단 한 순간도 중단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멈추시면, 인간들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향한 길을 잃는 것은, 멸망을 향해 간다는 뜻입니다.

3) 24절의 “내 말을 듣고”는, “나의 가르침을 새겨듣고, 들은 대로 실천하고”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표현으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데,  뜻으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 사람.> 여기서 ‘듣다.’ 라는 말과 ‘믿는다.’ 라는 말에는 모두 ‘실천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고, 믿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종말의 날에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입니다. 이 말씀에서 ‘심판’은 ‘멸망’을 뜻합니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다.” 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그때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그 생명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어떤 이유로 신앙생활을 중단한다면, 그래서 그 ‘완성’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미 얻은 생명도 잃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4) 25절의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라는 말씀에서 ‘죽은 이들’은 ‘죽어야 할 운명 속에 있는 이들(모든 사람)’이고,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살아날 때가 온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는, “이미 시작되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때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고, 지금 진행 중이고, 그날이 오면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종말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라는 말씀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믿고, 지금 회개하여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과 가르침들을 믿고 실천하면서 살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다 보면 지칠 때도 있고, 지루할 때도 있고, 유혹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의욕을 잃는 등... 큰 위기를 누구나 겪게 되는데,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송영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