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은 신의 현현…사람은 모두 선하다” 가르쳐“- 바알 셈 토브와 하시디즘
바알 셈 토브의 초상화. 18세기에 등장한 근대 하시디즘은 12,3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중세의 하시디즘과 이름은 같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근대 하시디즘은 앞에서 살펴본 루리아의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은 일종의 카발라 전통의 한 줄기라 볼 수 있다. 근세 하시디즘이 종래까지의 카발라 전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카발라 전통이 교리나 메시아의 도래 등에 큰 관심을 보인 것에 반해 근세 하시디즘은 특별히 실생활에서의 체험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근세 하시디즘 운동은 앞에서 잠깐 살펴본 샤바타이 운동이 성행하던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 일어나서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로 퍼졌다. 18세기 동유럽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카발라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이를 반대하고 정통 유대교 랍비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1698년 바알 셈 토브 탄생
카발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폴란드 남동쪽에 주로 살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쪽 리투아니아를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열망하는 샤바타이 식 카발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너무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메마르기만 한 랍비 전통에도 식상한 상태였다.이런 정신적 환경에서 실생활에서의 체험과 치유를 강조하는 하시디즘 운동이 생겨났다. 이 운동의 창시자는 이스라엘 벤 엘리에제르(Israel ben Eliezer, 1698-1760)이다. 나중에 그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바알 셈 토브(Baal Shem Tov), 혹은 줄여서 베쉬트(Besht)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거룩한 이름의 대사(聖號大師)’라는 뜻이다.
그는 지금은 우크라이나 땅이지만 그 당시 폴란드, 러시아 땅이기도 했던 오코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후원자의 도움으로 자랐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잘하는 일은 학교에 결석하는 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숲에 들어가 자연과 함께 하며 깊은 명상에 잠겼다. 도저히 랍비가 될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의 후원자는 그를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일 등의 잔심부름을 하게 했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그가 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를 따랐다. 나중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허드레 일도 했다. 18세에 결혼했지만, 부인이 젊어서 죽자 이곳저곳에서 떠돌아다니며 잡일을 맡아 하다가 결국 선생님이 되었다.
유대인들 사이에 소송 사건이 있을 때면 그가 중재를 해주었는데, 천성이 착하고 정직했을 뿐 아니라 사람의 속을 이해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 때문에 이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를 좋게 본 어느 돈 많은 사람이 자기 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를 사윗감으로 점찍었다. 이 사실을 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딸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그와 결혼했다. 처남의 반대 때문에 말 한 마리만을 물러 받은 바알 셈은 부인과 함께 시골로 들어가 점토나 석회석을 캐어 동네로 가져다 파는 일을 했다.
그는 이처럼 자연에 묻혀 일하는 것을 큰 행복으로 여겼다. 그 이후 유대인을 위해 특별히 운영하는 정육점, 여관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런 일을 할 때에는 주로 그의 부인이 일을 맡아하고 그는 숲 속에서 명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둘 사이에는 두 자녀가 있었다.
폴란드 메드지비지에서 교화
시골에서 농부들과 같이 지내면서 바알 셈은 약초의 효험을 알게 되고, 약초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고 메드지비지(Medzhybizh)에서 자기의 가르침을 일반을 상대로 전하기 시작했다. 상류층 유대인들이 찾아와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리하여 ‘메드지비지 가문(家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바알 셈의 가문이 점점 커져가자 탈무드의 가르침을 받드는 랍비 전통의 유대인들이 이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문에는 그 당시 이름 있던 랍비나 유대인 학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바알 셈이 시작한 하시디즘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범재신론적(panentheistic) 신관’이라 할 수 있다. 신이 만물 속에 내재한다는 생각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이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는 신의 현현(顯現)이라 여겼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을 하면 말에는 생명력이 있는데, 그 생명력이 바로 하느님의 나타나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선할 뿐, 악 자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악이란 그 자체가 악한 것이라기보다 잘못된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은 신이 준 능력이다. 그 아름다움을 신의 현현으로 보지 못하고 그것을 자기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만물 속에 신의 불꽃이 있으므로 만물을 선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도 본래 선하다는 일종의‘성선설(性善說)’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지금 상태가 어떠하든, 아무리 그들이 악한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기에 그들을 한 결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구를 사랑하듯 나를 원수처럼 대하는 사람이라도 한결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보편적 사랑을 강조했다.
일종의 ‘겸애설(兼愛說)’을 가르친 셈이기도 하다. 이런 원칙에 따라 바알 셈 자신도 사회에서 멸시당하고 천히 여겨지는 이들과 어울렸다. 특히 여자들과 어울렸는데, 이 때문에 반대자들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는 “누구도 자기 이웃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누구나 하느님께서 주신 이해의 분량에 따라 나름대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영적지도자 중심으로 가문 형성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른바 죄인들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취했다. 죄를 지었다는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대신 그들 속에 있는 신적인 부분, 선한 부분을 보라고 했다. 그들이 지었다는 죄도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할 무엇이라 보았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하느님에게 오르지 못할 정도로 타락할 수는 없다.”고 하며 죄는 오로지 무지와 어리석음일 뿐이라 하였다.
만물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신의 임재를 강조하는 범재신론적 신관에 입각해서 그는 신을 직접 체험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는 이것이 우리가 삶에서 누려야 할 끊임없는 즐거움(simcha)의 원천이라 주장했다. 그는 정통 유대교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금식이나 참회 같은 금욕주의적 종교형식이나 음울한 엄숙주의를 배격했다.
기도를 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모든 종교적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성적인 헌신의 정신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삶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즐거워하라고 했다. 삶의 두 기둥은 경배와 황홀경으로서, 경배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고, 황홀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하느님을 끌어안음이라고 했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것으로서, 이것을 통해 유배되어 갔던 셰키나가 다시 돌아오고 흩어졌던 불꽃들이 다시 모이게 된다고 믿었다.
바알 셈이 가르친 하시디즘에서는 기도가 특별히 중요하다. 물론 이 때의 ‘기도(dvkut)’는 하느님께 무엇을 구하는 탄원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 됨을 회복하도록 촉진하는 힘이다. 그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기도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 자신을 잊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도를 통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면 황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 인간은 신에게 완전히 흡입되므로 자신이나 자기 주위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개별적 존재를 잊어버린 상태를 ‘존재의 소멸(the extinction of existence)’이라 한다. 불교에서‘니르바나’가‘소멸’을 의미한다는 말을 상기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장자가 말하는 ‘내가 나를 여윔(吾喪我)’과도 비교될 수 있는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태에 든 사람은 ‘자연과 시간과 생각을 초월’하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하시디즘에서는 이런 상태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거나 춤을 추는 방법을 권장하기도 한다.
바알 셈 토브가 시작한 하시디즘은 기본적으로 교리 체계나 윤리적 행위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교 운동이었다. 이런 종교적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자디크(Zaddik, 의로운 이)’라는 영적 지도자들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야말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도관(導管)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신을 직접 체험한 이들 지도자들에게는 토라에 상응하는 권위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시디즘 신도들은 이런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모여‘dynasty’라는 일종의 가문이나 계보 같은 것을 형성했다. 한국 불교에서 볼 수 있는‘문중(門中)’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가문이 큰 것으로 9개, 작은 것으로 30개, 기타 수백 개의 소소한 그룹들이 있었다.
19세기 하바드하시디즘으로 발전
하시디즘은 이처럼 자디크의 권위를 받들었기 때문에 토라를 받드는 정통 랍비전통의 유대교와 충돌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박해까지 받았다. 이런 박해는 그들의 열성과 결속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하시디즘은 지성을 강조하는 정통 유대교의 가르침을 대량 흡수하여, 감정과 지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하바드 하시디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새로운 형태의 하시디즘에서는 자디크가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일 뿐 아니라 토라에 대한 지식도 함께 갖춘 지도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적 체험과 자기를 잊는 수단으로서의 기도를 강조하는 하시디즘의 기본 성격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런 하시디즘에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가 세계적인 유대인 사상가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였다. 다음에는 그에게 대해 알아본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가톨릭영성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카빌라의 스승들 - 아빌라피아와 모세 드 리 옹 ~ (0) | 2014.12.30 |
|---|---|
| ~ 아, 애야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너라 ~ (0) | 2014.12.27 |
| ~ 올바른 영성체 자세 ~ (0) | 2014.12.23 |
| ~ 우리 안의 영원한 생명을 살찌게 하기 ~ (0) | 2014.12.19 |
| ~ 순수한 두 존제 만나는 ' 관계 철학 ' 가르쳐 / 마틴 부버 ( 1878 -1965) ~ (0) | 2014.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