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썼다. "유일한 불행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서방 수도원 제도의 사부인 성 베네딕토는 수도자에 대해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여 말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토마스 머튼은 아마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수도자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뉴질랜드인 화가와 미국인 화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파리에 있는 어느 화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제1차 세계대전을 피하여 프랑스의 프라드에 보금자리를 꾸민 오웬과 루스 젠킨스 두 사람은 장차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도자요 저술가가 될 아들을 낳아 키웠다.
.그는 자신과 그의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타심, 관대함, 비폭력 등으로 가는 전통적인 길을 재발견했다. 수도자이자 저술가로서의 소명에 따라 머튼은 자기 세대의 사람들에게 자멸적인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증언하는 또 한 사람의 증거자가 되었다. 그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사이에 현존하는 사랑과 일치의 숨은 근거를 인식할 줄 아는 시민들이 살던 저 오래된 다른 나라를 새로이 탐색함으로써 그러한 길을 증언했다.
머튼은 비판적 정신과 시인의 열정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책, 여자, 사상, 예술, 재즈, 독주, 담배, 논쟁, 자기 의견을 남에게 들려주기 등을 자유분방하게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23세의 나이에 가톨릭 신자로 세례 받는 것을 선택했다. 그 다음에는 26세의 나이에 트라피스트 수도승이 되기를 선택함으로써 친구들을 경악시켰다.
전에 그는 '비트 세대'의 문학적 선구자가 되고도 남을 만한 충동들을 보여 주었다. 머튼은 늘 마약에 취한 듯 들떠서 끊임없이 길 위를 떠돌고, 질서정연하며 특징 없는 사회에 반항하는 저술활동을 펼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에 미국 한가운데에 있는 숲 속의 수도원에 자신을 가두었다.
한때 맨하탄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그는 기도하고 침묵하며 무수히 많은 세상의 흥미로운 일들로부터 몸을 숨기고, 검박하고 안정된 일과를 수행하는 자급적 농업 공동체에 스스로 소속되었다. 수도자가 됨으로써 머튼은 세상에 대한 그의 반항과 그러한 반항이 그의 내부에 불러일으킨 맹렬한 열정을 그 어떤 문학적 자세보다 더 절실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1941년 12월 10일, 하늘에 차가운 별들이 총총한 켄터키 주의 한 시골에 있는 게쎄마니 수도원에 도착한 머튼은 이내 이 수도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수도원의 수위실 문이 그의 등 뒤에서 닫히자,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를 세상을 떠나기 전에 더욱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해 무질서했던 자신의 청춘을 버리고 좁은 수도원 경내에 자신을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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