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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스테파노) 신부 말씀강

~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 양승국 신부님 ~

                                   

 

 

고통이 다가올 때 마다


2017-09-15 (금)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요즘 우리 사회 안에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 아동과 부모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담해집니다. 또래 사이에서의 따돌림으로 인한 피해 청소년들과 가족들이 받은 깊은 상처는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그 깊은 슬픔과 괴로움, 고독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하루하루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때로 극단적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고스란히 넘겨받아야 할 평생의 고통을 생각하니, 더 이상 이 비정상적인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부모님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꽃같은 나이의 금쪽같은 자녀가 그 높디높은 곳에서 홀로 외로이 세상과 하직했습니다.남아있는 부모님들 사는게 사는게 아닐 것입니다. 더 이상 아이가 없는 이 세상,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아가실 것입니다.

 

 

이런 비인간적이면서도 악마적인 분위기가 허용되기까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참으로 큽니다. 가해자 학생과 부모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 참회, 범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범사회적, 범교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교회 역사 안에는 성모님 일생의 여러 국면 가운데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기억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14세기경 시작된 이러한 신심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매년 9월 15일을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로 정해 성모님께서 몸소 겪으셨던 고통을 기억하고 묵상합니다.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때부터 큰 불편 앞에 직면하셨습니다. 아기를 출산할 방 한 칸조차 찾지 못해 별이 총총히 올려다 보이는 마구간에서 출산하셨습니다. 헤로데가주도한 ‘아기 대학살 사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해야하는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 길에 예수님을 잃고 사흘간이나 애간장을 태운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성모님은 후에 결정적인 고통, 감내하기 힘든 혹독한 고통 앞에 서게 되는데,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계시는 고통이었습니다. 너무나 처참한 아들의 몰골에 성모님의 가슴은 그야말로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고통 그 이상의 고통을 성모님은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셨을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 하늘이 내려앉는듯한 슬픔 가운데서도 성모님은 혼절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성모님은 있는 힘을 다해 아들 예수의 십자가 밑에 꿋꿋이 서 계셨습니다. 침묵 중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때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성모님이 아마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견뎌내야 했던 성모님의 영적인 고통은 십자가 위해서 겪으셨던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을 훨씬 능가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성모님은 예수님의 육체적 죽음에 영성적 죽음으로 동참하셨습니다. 결국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위해 똑같이 못 박히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성모님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살아있는 감실!’ 성모님의 육체와 영혼은 언제나 당신 아들 예수님과 하나였습니다. 성모님의 한 평생은 당신 아들의 영광이 온 세상을 덮을 때까지 희생으로 견뎌내셨습니다.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오르시기까지의 전 과정에 온 몸과 마음으로 동참하셨습니다. 그 결과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온전히 거하시는 새 시대의 성전, 살아있는 감실이 되신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두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 그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옵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마다 성모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표면에만 머무르지 말고 성모님처럼 고통의 이면에 새겨져있는 하느님 사랑의 얼굴을 바라볼 일입니다. 고통이 은총으로 변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성모님처럼 먼저 고통을 마음에 간직한 후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으로 고통을 바라볼 일입니다.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묵상해야겠습니다.




- 양승국(스테파노) 신부 -